2010년 2월 4일 목요일

arXiv.org

 

현재 최소한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이트는 arXiv.org (아카이브) 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이트는 디자인도 별로인 그냥 보면 아무 특징이 없는 사이트처럼 보이지만 물리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에 한번 접속하는 사이트입니다. 이곳에는 60만 건 가까운 프리프린트가 올라와 있고 완전 개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논문을 많이 그리고 빨리 읽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논문이 완성되면 저널에 제출되기 전 또는 그와 동시에 이 사이트로 프리프린트를 공개합니다. 이곳에 프리프린트를 올리는 이유는 먼저 자신의 일을 남에게 알리는 효과가 있고 또 다른 연구자로부터 잘못된 부분이나 빠뜨린 부분에 대한 코멘트를 얻을 수 있고 또 이 연구에 대한 originality를 인정받기 위함입니다. 아카이브는 미국의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에서 xxx.lanl.gov라는 주소로 시작되었습니다. 나중에 이 사업은 코넬대학교 도서관에서 이어 받아 지금까지 서비스해 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트래픽 분산을 위해 세계 곳곳에 미러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있었는데 지금은 중단되었습니다. 현재 200여 국가에서 한달에 40만명이 넘는 사용자가 접속해서 250만건의 논문을 다운로드 하고 있습니다. (물론 회비가 없는 무료 이용입니다.) 이 서비스를 유지하기위해서는 유지비가 꽤 나오는데 코넬대학교에서 이에 대한 공동 분담을 제안했습니다. 현재 연구기관을 통한 이용 중에서 약 75%가 상위 200개 연구기관에서 이용하는 거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연구를 많이 하는 기관에서 많은 이용을 하겠죠. 코넬에서는 이들 기관에 도움을 청했고 25개 기관이 도움을 약속했다고 합니다. 여기 그 리스트가 있습니다.

 

  •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 University of Cambridge (UK)
  • CERN - European Organization for Nuclear Research (Switzerland)
  • CNRS - 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 (France)
  • Columbia University
  • DESY - Deutsches Elektronen-Synchrotron (Germany)
  • Durham University (UK)
  • ETH Zurich - Eidgenössische Technische Hochschule Zürich (Switzerland)
  • Fermilab
  • Harvard University
  •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 Imperial College London (UK)
  • 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
  •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 Max Planck Society (Germany)
  • University of Michigan
  • University of Oxford (UK)
  • University of Pennsylvania
  • Princeton University
  • SLAC National Accelerator Laboratory
  • Texas A&M University

 

모두 미국과 유럽에 소재한 대학과 연구소 뿐이네요.


<Mac OS X 에서 사용하는 가젯>

2010년 1월 27일 수요일

빙하게이트

요즘 히말라야의 빙하에 대한 예측을 둘러싼 논란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미 빙하게이트(glaciergate)라는 새로운 말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지구 온난화를 주장하는 학자들에게 큰 타격이 되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프레시안에 아주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지구온난화 이론, '과학적 사기극'으로 전락하나 (1/24)

2035년 히말라야빙하 소멸', 어떻게 유엔 공식입장이 됐나 (1/24)

지구온난화의 '종말론적 예측' 비하인드 스토리 (1/25)

빙하게이트, 연구자금 타내기 위한 조작이 동기 (1/26)

 

기후학이나 지구물리를 공부해보지 않은 입장으로 전문적인 내용에 대해 뭐라 말하기는 그렇지만 사건의 진행과정이 심상치 않군요. 특히 이 사건의 당사자인 유엔의 기후변화위원회(IPCC)가 히말라야 빙하에 대한 보고서로 2007년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한 것을 생각하면 이 사건의 파장이 만만치 않을 걸로 보입니다. 사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논란은 전부터 있어왔고 특히 이산화탄소에 대해서는 반대파의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반대자중에는 하버드를 비롯한 명문대학의 교수들도 있는데 그 논지는 그동안 소외되고 지원받지 못한 기후쪽 연구자들은 온난화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가지더라도 말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지원과 많은 젊고 유능한 학자들이 이 분야에 뛰어 들고 있는데 이를 마다할 수 는 없다는 게 인터뷰의 주 내용이었는데... 제 생각에는 어느 쪽이 옳은 지는 판단하기가 아직은 이른 것 같습니다. 양 쪽 주장 모두 정당성과 단점을 가지고 있고 또 논쟁과 연구를 통해 진리에 다가가는 게 과학이니까요. 위의 기사중 1/24 일자 피어스의 기사는 과학자라면 곰곰히 생각해야 할 명제를 던져 준다고 봅니다. 아래는 기사중에서 인용한 피어스의 글입니다.

 

나는 지금도 내가 오보를 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스나인이 나에게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말한 권위자였고, 나는 그저 받아쓴 사람이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기자들보다 더 엄격한 기준에 맞춰 일한다는 내 믿음은 상실됐다. 예전에 쓴 문제의 글은 음식을 담는 봉투로 쓰여야할 것이다.

 

사실 과학자들은 다른 누구보다 더 엄격한 기준에 맞춰 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언론을 통해 자기와 자기의 연구가 널리 알려지고 유명인이되고 연봉이 올라가고 연구비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기회가 온다는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는 않겠죠. 하지만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전 사회가 입게 될 피해를 한번쯤 생각했다면 어땠을까요. 책임을 면하기 위해 여러 변명을 늘어 놓고 있는 IPCC의 고위 과학자들 보다 자신의 기사가 잘못됨을 인정하고 쓰레기로 처리하는 피어스 기자의 모습이 더 아름답게 보이고 과학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네요.

 

<IPCC 회장인 파차우리 박사; 출처: http://www.telegraph.co.uk 기사는 여기>



2010년 1월 22일 금요일

표절 연구도 학문이 되었나

 

이제는 논문 표절에 대한 연구, 어떻게 표절을 들키지 않게 잘 할수 있을까가 아니라 표절을 포함한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연구가 학문의 한 영역이 되어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표절, 좀 더 정확하게는 과학 연구에서의 부정행위는 말 그대로 과학 연구 결과를 수행하고 발표함에 있어서 의도적으로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과학 연구의 발전은 상호 믿음에 기초합니다. 즉 다른 사람의 논문이 그 사람의 능력 범위 안에서 타당하고 정확한 방법으로 수행된 연구의 결과라는 믿음입니다. 따라서 이미 발표된 논문은 후속 연구의 출발점이 되고 또 다른 논문에서 논증을 위해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런 믿음이 없다면 기존의 결론을 믿을 수 없고 관심있는 분야의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모든걸 다 다시해야하니 시간과 정열이 낭비되죠. 따라서 과학 논문에서 부정행위는 이런 불신을 키우고 후속연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거나 파행으로 이끌게 되므로 이는 반드시 하지 말아야할 일입니다. 이를 모두 잘 알고 있으면서도 부정행위는 끊이지 않고 일어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을 지 모릅니다.

연구에서의 부정행위는 표절이나 조작뿐 아니라 부정 부패까지 포함합니다. 약자에 속하는 다른 신진 연구자나 대학원 학생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까지도 포함됩니다.

최근 새로운 온라인 저널을 보았는데 표절에 대한 논문집입니다. 제목은  Plagiary: A New Scholarly Journal 입니다. 홈페이지는 http://www.plagiary.org/index.htm 입니다. 2006년과 2007년 출판물은 무료로 볼 수 있는데 그 이후로는 유료로 바뀐 것 같습니다. 그곳에 있는 논문이나 자료를 보면 열 받기 쉽습니다. 한번쯤 졸릴 때 들어가서 잠을 깨우기에는 좋을 듯 합니다.





2010년 1월 17일 일요일

ANPhA 아시아 핵물리 연합회

아시아 핵물리 연합회(ANPhA, Asia Nuclear Physics Association)가 2009년 7월 18일 창설되었고 2010년 1월 18일과 19일 일본 도카이의 J-PARC에서 첫 번째 심포지엄을 엽니다. (심포지엄 홈페이지는 여기) ANphA의 홈페이지는 일본 J-PARC에서 운영하며 여기 있습니다. (아직 썰렁합니다.) 2008년 10월 연합회 결성을 위한 첫 모임이 있었고 2009년 1월과 7월에 서울과 북경에서 설립을 위한 모임이 있었네요. ANphA는 한국-중국-일본이 주가 되어 아시아 핵물리 학자사이의 교류를 늘리고 후원하며 연구와 교육에 함께 공동으로 노력하는 게 목적입니다. 현재 회원국은 한,중,일과 베트남입니다. 심포지엄에는 이 4개국 외에 대만, 호주, 인도에서 참여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NSAC나 유럽연합의 NuPECC처럼 활동하면 좋겠지요. 현재 회장은 일본의 사카이 교수입니다. 아래 사진은 북경에서 찍은 사진으로 설립 멤버들입니다. 혹시 아시는 얼굴이 있는지 찾아 보시죠.

 

 

 

 

 


2010년 1월 14일 목요일

이란 핵물리학자 암살 소식

 

새해들어 여러 암울한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이란에서 핵물리학자가 폭탄 테러에의해 암살되었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이란 당국은 서방 측의 소행이라고 비난하고 미국은 이를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Masoud Ali Mohammadi 라는 이 학자가 이란의 야당 지지자라는 발표도 있었는데요, 일단 이를 이란의 핵 개발 계획과 연관시키는 것은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 이유는 모함마디가 핵물리학자가 아니라 (최근에는) 중력을 연구하는 이론 물리 학자로 물리학의 응용과는 거리가 아주 멀기 때문입니다. 테헤란 대학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그의 논문 리스트를 보면 (여기) 주로 중력, 양-밀즈 모델등에 대한 일을 해 왔습니다. 물론 그가 핵 개발에 개입한다면 약간(아주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가 암살 당할 정도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왔다고는 믿기 힘들군요.


<출처: NY Times>




2010년 1월 9일 토요일

CERN의 가속기 역사 50년

 

 

지금 세계 가속기중 최고 에너지 기록을 갖고 있는 LHC(Large Hadron Collider)는 유럽 연합의 CERN에 있습니다. CERN은 European Organization for Nuclear Research를 의미하는 데 세계 최대의 입자 물리 연구소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CERN은 프랑스어인 Conseil Européen pour la Recherche Nucléaire의 약자입니다. 입자물리 연구소인데 이름에는 왜 Nuclear가 들어있을까요? 이는 설립 당시의 상황에서 유래합니다. CERN이 설립된 해는 1954년으로 유럽의 12개국이 1952년 합의한 안건에서 출발합니다. 연이은 핵발전소 사고로 인해 "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사업이나 연구는 지원받기가 힘들어진 현재와는 달리 1950년대에는 핵폭탄과 핵발전소로 인해 "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지원받기가 쉬웠습니다. 이것이 입자물리 연구소인 CERN에 Nuclear라는 단어가 들어가게 된 이유입니다. 그리고 1959년 PS(Proton Synchrotron)가 완공되어 CERN의 첫 번째 가속기 실험이 시작됩니다. 따라서 LHC가 가동된 해인 2009년은 CERN 가속기 실험이 5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심포지엄인

 

From the Proton Synchroton to the Large Hadron Collider - 50 Years of Nobel Memories in High-Energy Physics

 

가 2009년 12월 3일과 4일 CERN에서 열렸습니다. 여기에 가면 발표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CERN은 현재 20개국이 회원으로 있으며 6개 나라와 2개 국제 기구가 옵저버 자격 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 외 수십 개 나라가 비회원국으로 CERN의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 나라 중 가장 늦은 2006년부터 비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곧 옵저버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CERN의 20개 회원국중 가장 많이 예산에 기여하는 나라는 독일입니다. 약 20% 가까운 예산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프랑스, 영국, 이태리가 따르고 있습니다. 2009년 회원국들로 부터 모은 예산은 약 7억 3천만 유로 (약 1조 4천억원 정도?) 입니다. CERN 회원국의 변화는 이렇습니다.

 

설립당시 회원국: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서독, 그리스, 이태리, 네델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영국, 유고슬라비아 (총 12 개 국가)

1959년: 오스트리아 가입 (총 13 개국)

1961년: 유고슬라비아 탈퇴 (총 12 개국)

1961년: 스페인 합류 (총 13 개국)

1969년: 스페인 탈퇴 (총 12 개국)

1983년: 스페인 재합류 (총 13 개국)

1985년: 포르투갈 합류 (총 14 개국)

1991년: 핀란드, 폴란드 합류 (총 16 개국)

1992년: 헝가리 합류 (총 17 개국)

1993년: 체코, 슬로바키아 합류 (총 19 개국)

1999년: 불가리아 합류 (총 20 개국)

 

옵저버 국가: 터키 (1961년 부터), 이스라엘 (1991년 부터), 러시아 (1993년 부터), 일본 (1995년 부터), 미국 (1997년 부터), 인도 (2002년 부터)

옵저버 기구: 유네스코 (1954년 부터), EC (European Commision, 1985년 부터)

 

비회원국중 회원국이 될 가능성이 있는 나라: 루마니아, 세르비아

비회원국중 옵저버가 될 가능성이 있는 나라: 파키스탄, 한국

 

마지막으로 40년 전에 나왔던 노래를 소개합니다. 가사를 알고 싶거나 자세한 내용이 필요하시면 (예: 왜 코끼리 그림이 나올까 등)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도 소개 되었습니다.

 




2010년 1월 6일 수요일

DESY 50살이 되다

 

독일에서 가장 큰 가속기 연구소라고 말할 수 있는 DESY(Deutsches Elektronen-Synchrotron)가 2009년 12월 18일 50번째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DESY는 막스-플랑크 연구소 집단과 함께 독일 연구소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헬름홀츠 연구회(Helmholtz Association)에 속해있는 연구소로 1959년 설립되어 최첨단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DESY가 가지고 있는 가속기는 독일 최대이며 그 동안 핵/입자 물리 분야의 연구를 수행했고 지금은 새로운 분야의 연구에 쓰이고 있습니다. (DESY의 홈페이지는 여기)

 

DESY는 독일 함부르크의 외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설립 당시의 목표는 장래의 입자 물리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세계적 가속기 센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1964년 첫 번째 싱크로트론 가속기가 완성되고 여기에서 DESY라는 이름도 생겼습니다. 이 가속기는 당시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가속기였습니다. 그 후 스토리지 링들이 만들어 지는 데 1974년 DORIS, 1978년 PETRA, 1990년 HERA가 완공됩니다. 90년대 후반과 200년대 초 ZEUS Collaboration에 의해 많은 데이터가 나왔습니다. HERMES Collaboration도 많은 논문을 생산 했었습니다. DESY의 첫 번째 목표였던 입자 물리 실험은 많은 업적을 남기고 지금은 종료되었습니다. 현재는 가속기를 이용한 다른 연구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처음 DESY를 만들 때부터 싱트로트론 복사의 사용은 염두에 두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포항 가속기가 이 목적으로 건설 되었습니다. 차이점은 포항 가속기는 처음 부터 싱트로트론 복사 사용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입자 물리 또는 핵물리 실험은 초기부터 배제 되었습니다.) DESY의 싱크로트론 복사는 나노 스케일의 연구를 위해 사용됩니다. 재료과학, 바이오 과학등이 주 목표입니다. (PETRA III와 DORIS, free-electron 레이저인 FLASH 그리고 EU의 지원으로 건설될 XFEL이 주 실험 장치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 사실 이런 형태의 가속기는 이런 방식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의 싱크로트론 가속기도 입자/핵물리 실험을 모두 마친 후에는 용도 변경을 하여 재료과학, 바이오 과학 쪽으로 다시 사용됩니다. 핵/입자 물리 쪽에서는 아쉽지만 DESY의 새로운 그리고 화려한 미래를 기대합니다.

 

 

<공중에서 바라본 DESY>




2010년 1월 5일 화요일

2010년 세계 몇 나라의 과학 예산

 

새해에 들어서면서 세계 각국의 과학 분야 예산이 발표 되는군요. 저번에 일본에서 진행되었던 과학 예산의 사무라이식 삭감에 대한 이야기를 올렸는데 (여기) 일본의 예산이 확정된 모양입니다. 아직 다른 곳의 소식은 보지 못했고 작년 12월 25일 일본 싱크로트론 가속기 센터인 SPring-8은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았습니다. (원문은 여기) SPring-8의 2010년 예산은 84억 9천만 엔으로 작년에 비해 겨우(?) 1억7천만 엔이 삭감된 액수입니다. 원래 제시 되었던 삭감 수준이 1/3 에서 1/2 이었으므로 이 정도면 학계의 항의가 먹혔다고 볼 수 있겠네요. (사실 이정도로 예산이 깎이면 연구소 문을 닫아야 할 정도입니다.) 불필요한 연구비를 줄여서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등을 추진하겠다는 하토야마 정권이 정책을 바꾼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오늘 뉴스에는 일본 유권자의 50%가 민주당 정권을 지지하지만 민주당의 공약에서 지지하지 않는 공약이 바로 고속도로 무료화라고 하네요. (뉴스는 여기)

 

프랑스는 좋은 편입니다. 연구소의 아이비 리그를 만들겠다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약속에 따라 대학교에 110억 유로라는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이는 미국의 연구비 증액에 자극받은 프랑스 정부가 약속한 350억 유로의 일부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돈은 지난 10년간 예산 부족에 허덕였던 프랑스 대학들의 잃어버린 10년을 보충하는 데 주로 쓰일 것이기 때문에 프랑스 연구진들의 (불만에 찬) 튀어나온 입은 아직 다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영국은 역시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영국은 STFC(Science and Technology Facilities Council)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데 5년간 24억 파운드를 투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액수는 원래 예정보다 삭감된 액수로 위원회는 삭감액을 각 분야에 고루 반영하려 노력했다고 말했습니다. 핵물리 쪽에서는 원래 예산의 29%가 깎이고 LHC에서 행해질 ALICE 실험 연구가 취소되었습니다. 물론 ALICE 실험은 계속됩니다. 단지 영국 쪽의 연구 기여가 빠진다는 이야기 입니다.

 

제일 사정이 좋은 곳은 그래도 미국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구 개발비를 점진적으로 GDP의 3% 수준으로 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었는데 이에 따라 예산이 대부분 올랐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가장 큰 삭감은 표준연구소 NIST의 연구 시설 건설 부문으로 14.5% 삭감되었습니다. (NIST 전체로는 예산이 증액되었습니다.) 가장 크게 예산이 오른 부문은 국가 핵 안전 분야의 핵 비확산 파트로 44% 예산 증액이 되었고 학술 연구 쪽으로 중요한 NSF는 8.4% 증가했습니다. 에너지성(DOE)의 과학국(Office of Science)의 전체 예산도 3.1% 증액되었는데 그 중 핵물리는 4.5%, 입자물리는 1.9% 증액되었습니다.

 

 

<CERN LHC의 ALICE 검출기를 조립하는 장면>




2010년 1월 1일 금요일

볼펜의 역사

 

위키에서 우연히 볼펜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볼펜이라고 생각되는데 볼펜의 종류는 요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우리 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많은 발명이 긴 산고 끝에 나온 것처럼 볼펜도 많은 발명가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위키에 나온 정보를 여기 소개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펜, 중국어로는 原子筆 , 영어로는 ball-point pen 또는 ball pen이라고 배웠는데 영국과 호주에서는 biro (바이로우 또는 비어로, 비로)를 쓰기도 한답니다. 볼펜의 심은 보통 0.7 mm 에서 1.2 mm의 구슬로 볼펜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 된듯합니다. 그럼 비로라는 단어는 어디에서 유래 했을까요? 그건 바로 볼펜을 발명한 헝가리의 발명가 리슬로 비로 (László Bíró)에서 나왔습니다.

 

볼펜이 나오기 전까지 서양의 주 필기도구는 펜과 만년필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만년필을 더 좋아합니다만.) 하지만 이것들은 쓰기에 그리 편하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종이가 아닌 다른 표면에 글을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볼펜은 겉으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쓰기에 안정적이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볼펜을 경제적인 가격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실험과 더불어 현대 화학과 20 세시의 기술이 접목되어 있습니다.

 

볼펜에 관한 기록은 17 세기 갈릴레오 갈릴레이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볼펜에 대한 첫 특허는 1888년 10월 30일 Kayleigh frost Loud라는 가죽을 다루는 사람에 의해서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가죽을 무두질하는 사람인데 무두질을 위해 가죽에 표시를 해야 하지만 당시의 만년필로는 가죽에 표시를 하는 게 불가능 했습니다. 이 사람의 아이디어는 소켓에 회전할 수 있는 작은 금속구를 넣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볼펜의 구조와 같은 거죠. 이렇게 만든 첫 볼펜은 발명가의 의도대로 가죽과 같은 거친 표면에 글을 쓸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종이위에 세밀하게 글을 쓰기에는 볼펜이 너무 거칠었기 때문에 상용화 되지는 못했습니다.

 

1904년부터 1946년 사이에 만년필을 대체할 수 있는 필기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습니다. 이 때 여러 건의 볼펜에 대한 특허가 발급되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잉크를 가는 관에 넣고 관 끝에 작은 볼을 가두어 빠지지 않도록 하고  잉크가 이 볼에 달라붙어 있다가 종이위에 볼을 굴리면 잉크가 종이에 묻게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방식의 단점은 잉크가 고르게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볼 소켓이 너무 타이트하면 잉크가 너무 적게 나오거나 아예 나오지 않았으며 반대로 너무 느슨하면 잉크가 쏟아져 나오곤 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 때 헝가리의 신문 편집자인 라슬로 비로가 등장합니다. 그 또한 글을 많이 쓰는 사람으로 만년필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는데 잉크를 채우고 지저분해진 종이를 치우는데 시간이 많이 들고 만년필의 날카로운 펜끝 때문에 종이가 쉽게 찢어지곤 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볼펜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비로는 그 당시 볼펜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을 알고 있었는데 그는 신문 인쇄 잉크가 빨리 발라서 종이가 젖거나 얼룩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종류의 잉크를 이용해 볼펜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당시 볼펜의 또 다른 문제점은 잉크가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용 시에는 볼펜을 거의 수직으로 잡고 써야 했습니다. 비로는 잉크관에 압력을 가해 삼투압을 이용해 잉크가 흐르게 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화학자인 동생 조오지의 도움으로 현재의 볼펜이 탄생하고 1938년 6월 15일 영국 정부에 특허를 신청하였습니다.


1940년 비로 형제는 친구와 함께 나치 독일을 피해 아르헨티나로 이주합니다. 그곳에서 Birome라는 브랜드로 볼펜을 생산하였습니다. 볼펜은 또 만년필과 달리 높은 곳에서도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영국 공군이 볼펜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1945년 샤프펜슬 메이커인 에버샤프는 에버하드-파버와 함께 볼펜의 미국 판매를 위해 특허를 취득합니다. 같은 시기 한 미국 사업가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비로의 볼펜을 발견하고 몇 자루를 사서 귀국 후 레이놀드 국제 펜 회사를 차리고 특허 없이 볼펜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볼펜은 1945년 10월 29일 뉴욕의 백화점에서 한 자루에 당시 가격으로 $12.50 에 팔렸으니 엄청나게 비싼 제품이었습니다. 그 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볼펜이 생산되어 팔려갔습니다. 값싼 볼펜심은 BIC, 후버, 제록스 같은 회사에 의해 생산되었습니다. 비로의 생일인 9월 29일은 아르헨티나에서 1990년 발명가의 날로 지정되어 기념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2년 한 회사원이 일본사람들이 볼펜을 쓰는 것을 발견하여 일본의 볼펜 제조 회사를 알아내고 이듬해인 1963년 첫 볼펜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회사원이 바로 (주)모나미를 설립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당시 가격은 15원이었다고 합니다.)


 

<볼펜 설계도와 발명가 라슬로 비로>




2009년 12월 27일 일요일

논문 쓰기 위한 10가지 규칙

 

저번에 대학원에서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을 위한 조언이라는 내용을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 그 중 하나가 논문을 많이 쓰라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논문 쓰는 10 가지 규칙 (Ten Simple Rules for Getting Published)에 대한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이를 쓰신 분은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고의 교수인 Philip E. Bourne라는 분으로 오픈 저널인 PLoS: computational biology의 에디터입니다. (2009년 벤자민 프랭클린상 수상) 이 에세이 또한 PLoS: computational biology에 실려 있습니다. (원문은 여기) 이 기사는 계산 생물학의 국제 학회 소속 student council의 요청으로 2005년 학회에서 (주로 처음 논문을 쓰는) 생물 학도를 위해 논문 쓰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전공 분야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적으로는 모든 과학 논문 작성에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되어 여기 소개합니다. (파란색 부분은 에세이에 있는 말이고 밑의 설명은 제 생각입니다.)

 

Rule 1: Read many papers, and learn from both the good and the bad work of others. (논문을 많이 읽어라. 좋은 논문, 나쁜 논문 모두 배울점이 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논문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좋은 논문은 물론 반드시 읽어야할 가치가 있고 나쁜 논문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따라서 나쁜 논문도 조금은 읽어야 합니다. 여기서는 하루에 최소한 두 개의 논문을 읽으라고 권합니다. 물론 논문을 아주 자세히 분석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논리의 흐름, 논문의 질, 형식 등은 따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논문을 비판적으로 읽어야 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데이터 분석이나 실험 장치에만 매달리지 말고 자기가 하는 연구를 큰 틀에서 가끔은 생각하는 게 필요하죠.

 

Rule 2: The more objective you can be about your work, the better that work will ultimately become. (자신의 연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수록 더 좋은 연구가 가능하다.)

자신의 연구에 객관적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때로는 반대파의 시각으로 자신의 일을 보는 게 필요하죠. 논문을 쓰면서 자신이 이 논문의 리뷰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Rule 3: Good editors and reviewers will be objective about your work. (좋은 에디터와 리뷰어는 너의 연구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논문을 저널에 submit하기 전에 충분히 검토를 하고 보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리뷰어의 임무는 논문 비판이 아니라 논문의 질을 올리는 것입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아주 심술궂은 리뷰어도 있습니다.) 하지만 틀린 논문에는 그런 임무를 하지 않는다는 필자의 말에는 동의합니다.

 

Rule 4: If you do not write well in the English language, take lessons early; it will be invaluable later. (영어에 자신이 없다면 빨리 배워라. 어차피 필요한 일이다.)

요즘 대부분의 저널은 영어를 공용어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영어로 논문 쓰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영어 만능주의에는 반대하지만 전문 학술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영어는 필수입니다. 처음 논문 쓰는 (특히 비영어권) 사람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바로 영어에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고급 단어, 고급 문장을 이용해 논문을 고급 영어로 쓰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과학논문은 소설이나 시가 아닙니다. 현란한 단어나 고급 문법보다는 직설적이고 논리적인 글이 훨씬 보기 좋습니다. 내가 쓴 논문을 읽는 사람  중에는 비영어권 사람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멋있는 말보다는 문법에 충실하게 명확하게 자신의 연구 결과를 설명하는 게 필요합니다.

 

Rule 5: Learn to live with rejection. (리젝트 당하는 것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논문을 리젝트 당하면 물론 기분 나쁩니다. 하지만 실패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죠. 다른 일상사와 마차가지로 연구에서도 그렇습니다. 사실 저자의 말대로 과학을 하는 것은 리젝트 받는 것의 연속일 수도 있습니다. (논문에서도 그리고 직장 찾는 것에서도) 논문의 리뷰어의 수는 저널에 따라 다릅니다. 리뷰어가 여러 명일 경우 어느 리뷰어는 추천을 어느 리뷰어는 리젝트를 놓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리뷰어와 싸움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논문을 처음 쓰는 경우에는 그래서 경험 많은 이와 함께 쓰는 게 좋습니다. 연구 주제, 방법, 논문 쓰는 법뿐 아니라 리뷰어에 답장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으니까.

 

Rule 6: The ingredients of good science are obvious—novelty of research topic, comprehensive coverage of the relevant literature, good data, good analysis including strong statistical support, and a thought-provoking discussion. The ingredients of good science reporting are obvious—good organization, the appropriate use of tables and figures, the right length, writing to the intended audience—do not ignore the obvious. (좋은 과학의 요소는 명백하다. 연구 주제의 새로움, 관련 논문에 대한 충분한 이해, 좋은 데이터, 통계적으로 충분히 좋은 분석, 철저한 토의 등이다. 좋은 과학 논문의 요소 또한 명백하다. 적절한 구조 배치, 적절한 표와 그림 활용, 알맞는 길이, 독자층을 의식한 글쓰기 등. 명백한 것들을 무시하지 마라.)

이 저자는 논문의 객관성을 자주 강조합니다. 좋은 연구를 하는 것과 좋은 논문을 쓰는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조금은 다르죠. 따라서 논문을 쓰고 저널에 보내기 전에 주위의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구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Rule 7: Start writing the paper the day you have the idea of what questions to pursue. (연구 주제가 떠오르면 그 날부터 논문을 쓰기 시작하라.)

학위 논문과 학술지 논문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학술지 논문은 대개 간결하면서 요점을 잘 드러내도록 써야 합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즉시 논문을 쓰기 시작하라는 말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논문의 형태로 노트를 만들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냥 아이디어를 갈겨쓴 노트가 아니라 나름 정리되고 논리적인 (물론 나중에 엄청난 수정을 거치겠지만) 논문 형식으로 노트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고문헌 정리도 그 때 그 때 해놓으면 편리하죠. 참고문헌으로 인용할 논문은 반드시 한번은 읽어 보십시오.

 

Rule 8: Become a reviewer early in your career. (논문 심사 경험을 빨리 갖도록 하라.)

리뷰어가 되서 다른 저자의 논문을 심사하는 것은 좋은 경험입니다. 따라서 빨리 리뷰어의 경험을 갖게 되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대학원생에게 논문 리뷰를 맡길 저널은 없습니다. 그래서 지도교수를 이용하는 겁니다. 지도교수에게 부탁하여 심사 의뢰가 들어온 논문을 혼자 심사해 봅니다. 그리고 지도교수의 심사문과 비교해 봅니다. 그러면 자신이 무엇을 간과하고 부족했는지를 알 수 있죠.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이 지도교수에게 부탁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학생을 생각한다면 지도교수로써 이 정도는 고려해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최소한 박사과정 학생 정도는 되어야 심사할 수 있겠죠?)

 

Rule 9: Decide early on where to try to publish your paper. (논문을 어느 저널에 보낼 것인지 빨리 결정하라.)

보통은 논문을 쓰기 전에 제출할 저널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저널에 따라 형식이 다르고 또 길이에 제한이 있을 수 있으므로 나중에 수고를 덜기 위해 처음부터 최소한 정식 논문인지 레터 형식으로 할 것인지 정도는 생각을 하는 게 좋습니다. 또 이 정도의 논문은 이런 저널에 내면 알맞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미 논문의 질과 저널의 수준을 파악하고 있는 셈이죠. 저널을 선택할 때는 또 주 독자층의 전공 분야를 알아야겠죠.

Rule 10: Quality is everything. (논문의 질이 가장 중요하다.)

이건 당연한 말입니다. 논문의 수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몇 편의 논문을 쓰는 게 훨씬 임팩트가 강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논문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히고 인용되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논문은 이력서의 칸을 채우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학계에 알려지는 데는 별 효과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큰 것 하나만 노리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작은 것을 꾸준히 만들 때 큰 것도 나오겠죠.

 

 

<Philip E. Bourne>


2009년 12월 20일 일요일

자기 단극 (magnetic monopole)의 발견?

 

연합뉴스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는데 2009년 올해 과학성과 상위 10개 부분을 사이언스를 인용해 발표했습니다. (원문은 여기) 그 중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이 부분입니다.

 

▲ 자기의 단극(單極) 발견: 현대 전자기학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있지만 100여 년 전부터 그 존재가 예견됐던 자기의 단극(monopole)이 마침내 영국 학자들에 의해 발견됐다

 

자기 단극 혹은 홑극으로 불리는 magnetic monopole에 대한 연구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중요한 연구 과제이기도 합니다. 이를 찾기 위한 실험이 계속되어 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미욱한 탓인지 올해 그것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요. 만약 magnetic monopole이 발견되었다면 과학사를 뒤흔드는 큰 사건인데 주위에서 그에 대한 뉴스를 접하지 못했다는 게 이상하더군요. 연합뉴스의 출처가 사이언스 잡지이니까 그곳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12월 18일자로 2009년의 큰 발견이라는 타이틀로 기사가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기사를 공짜로 볼 수 없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언론 매체에 나와 있을까 싶어 찾아보았습니다. BBC 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 BBC의 기사 중 자기 단극에 관한 기사를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 Magnetic monopoly: Physicists working with strange crystalline materials called spin ices created magnetic ripples that behaved like "magnetic monopoles" - fundamental particles with only one magnetic pole.

 

연합뉴스의 기사와는 다르죠. 자기 단극처럼 "행동하는" 웨이브를 발견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원래 자기 단극으로 불리며 과학자들이 찾으려고 했던 전자기학에 나오는 자기 단극이 아니고 특정 물질에서 마치 자기 단극처럼 행동하는 준입자 (입자는 아니지만 입자처럼 다룰 수 있는 것)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위키피디아에도 이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여기) 명확하게 자기 단극과 응집물질에서 발견된 자기단극 준입자를 혼동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네요. 우리나라 언론에도 과학 전문기자가 좀 많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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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4일 금요일

예산 삭감에 떠는 일본의 WPI

 

최근 일본에서는 과학계의 예산 삭감 바람이 불어서 많은 과학자들이 걱정한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한 소식은 네이처의 뉴스란에도 소개가 되었는데 구독료를 내지 않으면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뉴스에 대한 댓글은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 가시와 소재 동경 대학교의 Institute for the Physics and Mathematics of the Universe (IPMU) 의 홈페이지에 나온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 물리학과의 MacAdams 석좌교수이자 IPMU의 초대 소장인 히토시 무라야마 교수의 인터뷰를 중심으로한 기사입니다. (원문)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로 (말많은?) World Class University (WCU)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전정부에서 처음 기획되었고 현정부 들어 시행이 되고 있는데 이와 비슷한 프로젝트가 일본에도 있습니다. 그 이름은 World Premier International Research Center Initiative program으로 약어로는 WPI 입니다.

 

WPI는 2년전인 2007년 10월에 시작이 되었는데 일본에 신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프로젝트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에 들어 갔습니다. WPI의 목표는 일본에 다섯 개의 새로운 국제 과학 연구소를 세우고 이를 국제적 명성의 연구소로 만들기 위해 30% 이상 외국인 학자를 의무적으로 고용하고 연구소안에서는 영어를 공용어로 쓰며 학제간 연구를 장려하고 이로써 일본과 국제 사회의 언어적 문화적 장벽을 허무는 것을 요구합니다. IPMU도 WPI에 의해 설립된 연구소입니다.

 

지난 9월 일본은 정권교체를 택했고 하토야마 신정부가 예산 절감을 내세우면서 WPI를 포함한 일본의 과학분야 연구비를 삭감하려 합니다. 새로이 만들어진 Government Revitalization Unit 은 400 개가 넘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를 위해 청문회를 갖는다고 합니다. 이 위원회는 정치인과 기업가로 주로 이루어져 있고 학자들은 소수인데 이 위원회가 각 프로그램의 효율성을 판단하여 프로그램들 종료할 것인지 예산을 반이나 1/3 삭감할 것인지를 권고할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 재무성은 이 위원회의 권고 사항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 들일 것이라고 했는데 이 위원회는 이미 WPI 센터의 외국인 학자, 학제간 연구소, 젋은 학자와 여성 학자에 대한 지원 삭감을 권고했다고 합니다. 마루야마 소장은 30-50% 의 예산 삭감 또는 경우에 따라 프로그램을 완전 종료 하는것은 재능있는 학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이런 결정이 WPI의 예산 삭감에서 멈추지 않고  과학계 전체로 확산될 것을 염려합니다.

IPMU는 현재 72 명의 전일제 학자중 41 명이 외국인이며 2 년간 10 개의 상을 수상했으며 주 연구 분야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 입니다. 미국 잡지인 Physics Today와 SLAC의 이론 물리 학자 마이클 페스킨 (Michael Peskin), 프린스턴의 천문학자 마이클 스트라우스 (Michael Strauss)등이 IPMU의 업적을 인정하는 코멘트를 하지만 예산 삭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WPI의 director인 쿠로키 교수는 이에 대해 항의하고 대항할 것을 촉구 합니다.

"우리는 일본의 과학 리더쉽을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 일본은 항상 세계를 리드하는 첨단 과학을 지원해 왔고 이는 국가의 자존심 문제다. 우리는 이미 지난 몇 년 4 개의 노벨상을 비롯한 찬란한 성과를 거두었다. 현 정부는 선거 기간 동안 말했던 과학 진흥에 대한 공약을 지켜야 한다." 그는 또 이런 결정이 국제 과학계에서 일본의 위상 추락과 함께 일본이 신뢰할수 없는 국가로 인식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에 대해 2006년 노벨상 수상자인 캘리포니아 대학의 천체물리학자 조지 스무트 (George Smoot)도 동조하고 있군요.

 

쿠로키 교수는 마지막으로 국제 사회에 일본 정부에 압력을 가해줄 것을 호소하는 데요, 아래는 쿠로키 교수가 보내는 호소문입니다.

 

하토야마가 일본 수상으로는 처음으로 과학 분야 학위를 갖고 있다는데 이 소식은 좀 의외입니다. 다르게 보면 일본의 경제 상태가 아주 좋지 않다는 뜻인지도 모르겠군요.

 

 

Crisis of Science in Japan

 

Toshio Kuroki, MD

 

When his cabinet launched in the early September, Prime Minister Hatoyama, promised to promote education and science. First time in our history, Dr. Hatoyama was educated in science (mathematics) at University of Tokyo and at Stanford University for PhD degree; three other cabinet members were also educated in engineering. We trust his words naturally.

 

During this two weeks, the government has been conducting public hearing on more than a hundred government-funded programs including science, where committees made up mostly by non-experts have judged the effectiveness of each science program and recommended termination, reduction in funding by a half or a third. Minister of Finance publicly announced that the Ministry will take these recommendations by the committees seriously.

 

Nature reported on line 17 November the crisis of Japanese science. Yes, it is really crisis. If this goes on, science budget will be deeply cut and Japanese science will die.

 

Along with super-computer, funding to basic/applied research, and employing scientists, the WPI (World Premier International Research Center Initiative) program also faced deep cut of budget. This WPI program aims to establish a globally visible and internationally opened research center in Japan. Five WPI research centers were launched on October 1, 2007, in which 30-50% of scientists are non-Japanese, English is used as their official language and interdisciplinary research is promoted. http://www.jsps.go.jp/english/e-toplevel/index.html

 

I, as Program Director of WPI, would appreciate it if you understand the situation of WPI and send an e-mail, before December 15, to the Ministry of Education, which fortunately understands the importance of science.

 

      To: nak-got@mext.go.jp

 

      Subject: No. 14, WPI
or any comment on science in general

 

which will reach Senior Vice Minister and Vice Minister of Education .

 

Thank you for your cooperation.

 

November 22, 2009

Toshio Kuroki, MD

 

Deputy Director of Science Research Center, Japan Society for the Promotion of Science

 

WPI Program Director

 

Professor Emeritus, University of Tokyo and Gifu University

 

 

 

 

 

2009년 12월 2일 수요일

LHC에서 나온 첫 논문

 

눈이 내리는 날 새벽 다른 사람보다 먼저 일어나 깨끗하고 새하얀 눈밭에 제일 먼저 자신의 발자국을 찍으려 했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과학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난 11월 23일 CERN의 LHC에서 처음으로 양성자-양성자 충돌 실험이 실시 되었죠. 그 결과가 논문으로 11월 28일자로 벌써 나왔습니다. (arXiv:0911.5430) LHC에는 CMS, ATLAS, LHC-b, ALICE 등의 실험이 있는데 중이온 실험이 목표인 ALICE에서 선수를 쳤습니다. 경쟁이 더 치열해 지겠네요.


<출처: arXiv:0911.5430>

2009년 11월 30일 월요일

초대칭 입자

초대칭 입자가 발견 될건지에 대한 내기가 9년전인 2000년 6월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Triangle-2000 meeting에서 있었습니다. 결론을 내리는 시기는 2010년 6월 21일까지로 그 당시에는 이 때 쯤이면 LHC에서 무언가 결과가 나오길 기대 했었습니다. 내기에서 지는 쪽은 $50 이상의 꼬냑 한 병을 사가지고 와야 합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토프트도 있는데 'No'에 걸었습니다. 단 "양 쪽 모두 승리를 주장할 것이다"라고 주를 달았습니다. 16:7 로 부정적 전망이 우세합니다.

 

 





2009년 11월 26일 목요일

중국의 핵물리학 이론 연구

 

중국의 이론 핵물리학을 간단히 소개하는 논문집이 출판되었네요. 총 26 개의 논문이 Science in China Series G: Physics, Mechanics & Astronomy의 volume 52, no. 10 에 실렸습니다. 사실 이 저널은 중국 과학원 (Chinese Academy of Sciences)에 의해 발행되는 저널로 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지금은 독일 Springer Verlag에 의해 출판이 되지만 (편집은 중국 과학원이 함) 그리 잘 알려진 저널은 아닙니다. 하지만 중국 내의 연구에 대해서 이런 논문집을 만들기에는 적절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이 논문집의 목적은 최근 중국에서 건설된 대규모 입자 가속기를 이용한 실험에서 나오는 결과를 해석하고 새로운 input을 주는 핵물리학의 이론 분야 연구를 리뷰 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핵물리학 연구에 사용되는 입자 가속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Cooling Storage Ring of Heavy Ion Research Facility in Lanzhou (HIRFL-CSR): 2007년 완공되어 방사능 이온 빔을 생산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거론되는 중이온 가속기의 성격과 비슷합니다. 연구 주제는 불안정한 원자핵, 핵물질의 isospin 의존도, 붕이온 융합, 초중량의 원자핵 합성, 강입자 물리, 고밀도의 핵물질, 고전하를 갖는 핵이온 등과 그 응용입니다.

 

(2) 베이징 전자-양전자 가속기 (Beijing Electron Positron Collider II)에서 업데이트된 BES-III (Beijing Spectrometer III): 빔의 에너지가 4 GeV에 이르는 전자-양전자 충돌 실험 장치로 등소평의 직접적인 관심하에 건설된 BEPC의 업그레이된 장치. 주로 차모니움 (charmonium) 물리, D (메존) 물리, 타우 (tau)에 관계되는 물리, 그리고 가벼운 강입자의 스펙트럼을 연구합니다.

 

(3) Shanghai Synchrotron Radiation Facility (SSRF): 2009년 4월 완성된 고에너지 (3.5 GeV)의 광자 빔을 생산 하는 가속기. 광자와 핵자 또는 원자핵의 충돌 실험을 통해 핵물리의 다양한 연구과제 수행을 목표로 함. 이 가속기 시설은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연구 시설로 핵물리뿐 아니라 재료, 바이오를 비롯한 학술 연구와 산업기술 개발에도 이용됩니다.

 

이 논문집에서는 위에 나열한 가속기에서 연구되는 주제를 중심으로 중국에서 수행되고 있는 핵물리학 이론 연구를 리뷰한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대략 다섯 가지 연구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1) 핵물질의 상태 방정식과 열역학, 그리고 QCD. 최근의 관심은 핵물질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비율이 1:1 이 아닌 경우 미디움에서 핵자의 상호작용과 상태방정식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있다. 즉 nuclear symmetry energy가 밀도에 따라 그리고 아이소스핀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가 하는 문제는 방사성 원자핵의 구조뿐 아니라 희귀 동위원소의 붕괴 그리고 중성자 별에 대한 천체물리에도  관계된다. 이에 대한 연구로는 isospin asymmetric nuclear matter의 상태방정식을 기술하기 위한 현상론적인 momentum-independent model, HBT interferometry를 이용해 밀도에 따른 symmetry potential을 연구하는 방법의 문제점, hard-dense-loop을 이용해 zero temperature와 finite quark chemical potential에서 QCD의 상태방정식, strange quark matter등이 리뷰되었다.

 

(2) 강입자 스펙트럼과 붕괴 성질:  N^*(1535) 의 성질에 대한 연구가 chiral quark model을 이용해 이 강입자의 파동함수에  qqq 성분과 qqqq\bar{q} 성분을 포함시킨 모형에서 연구되었다. N^*(1535)N\eta 채널과 강하게 연결되는데 최근의 연구는 이 입자가 N\phi 채널과도 강하게 결합하는 걸 보여주고 있고 이는 BES 데이터에사 유추된 N^*(1535) K \Lambda 의 결합상수가 크다는 것에 의해 뒷받침된다.

 

(3) 이질적인 원자핵의 구조와 반응: 중이온 가속기로 인해 방사성 이온 빔이 가능해 짐에 따라 nuclear chart에서 지금까지 접근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연구가 가능해졌다.  이질적 (exotic) 핵구조에 대한 이론 연구가 리뷰되었다. 양성자의 방사능과 양성자 드립라인을 넘어서는 proton-rich nuclei 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일반화된 liquid-drop model에서 연구되었다. 천체 반응인 {}^{22}Mg(p,\gamma){}^{23}Al{}^{26}Si(p,\gamma){}^{27}P 반응이 Skyrme-Hartree-Fock model 에서 얻어진 평균장 퍼텐셜을 이용해 연구되었다. 또한 {}^{172}Tm 에사 발견된 4 개의 밴드, N=Z (중성자의 수 = 양성자의 수) 핵인 {}^{52}Fe, {}^{33}Mg 의 자기 쌍극자 모멘트, 그리고 찌그러진 초핵등이 연구 되었다.

 

(4) 중이온 융합 (fusion)을 통한 아주 무거운 (초중량, super heavy) 원소의 합성: super-heavy element (SHE)의 합성은 수 십년간 핵물리의 주요 연구 과제였다. Z = 103 부터 116 그리고 118 의 SHE의 많은 동위원소가 실험에서 발견 되었고 Z=112 이하의 원소는 이름이 지어졌다. 중국에서는 두 개의 새로운 초중량 원자핵 {}^{259}Db{}^{265}Bh 가 HIRFL에서 발견이 되었다. SHE의 생성 단면적과 반감기는 전하 수 Z 가 커짐에 따라 급히 줄어든다. 중이온 융합 반응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실험을 가이드하기 위해 많은 이론 계산이 수행되었으며 이 중 일부를 리뷰하였다.

 

(5) 새로운 원자핵 모형: 원자핵의 shell model 과 collective model 과 관련된 새로운 모델이 포함된다. nuclear shell model Hamiltonian 의 행렬 원소의 일반적 행동에 대한 연구와 collective model에서는 milti-O(4) model의 4차항까지의 처음 계산에 대한 리뷰가 포함된다.


<Lanzhou에 위치한 HIRFL-CSR. 출처: http://imp.cas.cn>



2009년 11월 23일 월요일

마이클 그린, 새 루카스좌 교수

 

저번 포스트에서 마이클 그린이 호킹의 뒤를 이어 루카스좌 교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호킹은 끈이론에 그다지 찬성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기사를 영국의 가디언과 캠브리지 뉴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가디언, 10월 24일 2009)  원문은 여기

 

물론 루카스좌 교수가 된 직후 가진 인터뷰이니까 그린의 시각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기사를 쓴 듯 합니다. 대략 몇 가지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먼저 가디언에 실린 뉴스입니다.

 

먼저 기자는 그린의 옛 모습이 해리슨 포드 닮았다고 합니다. 사진을 보고 판단해 보시죠. 그럴듯 하죠?


<Michanel Green의 젊었을 때 사진 (왼쪽)과 현재의 사진 (오른쪽)>

 

그리고 끈이론의 간단한 역사를 설명하고 끈 이론의 소위 1차 혁명과 2차 혁명에서 그린이 한 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 끈 이론의 검증에 대한 그린의 의견이 피력됩니다. 끈이론의 발전을 (전기력과 자기력이 하나라는) 전자기력의 발견에 비유합니다. (여기에 대한 반론은 이곳을 참조) 그리고 진리=뷰티 라는 명제와 끈 이론의 문제, 즉 검증에 관한 의견을 말합니다. LHC가 초끈 이론을 검증할 수 있다는 의견에는 (거의 모든 학자들이 그렇듯) 찬성하지 않는군요. 끈 이론의 반대파에 대한 생각도 말했는데 이는 좀 좋지 않아 보입니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보이지 않는군요. 대표적인 반대파 두 사람에 대한 그린의 의견입니다. "두 사람 다 이 분야에서 알려질 만한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존 더 자세한 평은 이렇습니다.

 

피터 보이트 (Peter Woit, Not Even Wrong: The Failure of String Theory and the Search for Unity in Physical Law 의 저자, 번역판은 여기)에 대해: 그는 끈 이론 반대를 위한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다. 내 생각에 그는 박사학위는 있지만 전직 물리학자이다.  아마 컬럼비아에서 시스템 매니저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다. 그는 전문 물리학자가 아니고 끈 이론에 강한 반감을 갖고 블로그한다. 그에게 좋은 일이다. - 보이트에게는 기분 나쁜 말일지 모르죠. 그의 현재 타이틀은 컬럼비아대학 수학과 "Senior Lecturer" 라고 합니다. 보이트의 코멘트는 여기

 

리 스몰린 (Lee Smolin, The Trouble with Physics: The Rise of String Theory, the Fall of a Science, and What Comes Next 의 저자, 이 책의 번역이 나왔는지 모르겠네요)에 대해: 그는 물리학에 대해 끈 이론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고 그걸 프로모트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미디어가 북치고 장구치며 이를 부풀렸다. 이는 어느 대학 어느 곳에서 볼 수 있는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끈 이론은 번성하고 있다.

 

이론물리가 끈 이론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사람들은 어느 것이 더 생산적이라고 느끼는 분야의 일을 한다. 다른 분야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다 좋다. 하지만 끈이론외에 다른 것은 없다. (the only game in the town)

 

끈 이론의 대가인 만큼 끈 이론의 미래에 상당히 낙관적입니다. 호킹 라디에이션 문제 뿐 아니라 고온 초전도 문제도 해결하여 현재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끈 이론이 갖고 있다고 말하는군요. (MRI와 WWW 가 입자 물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예로 들면서)

 

그외에 그린은 극단적 무신론은 싫어하지만 종교는 가지고 있지 않고 Open University에서 국제 관계 강의를 하는 부인과 사이에 9살난 딸이 있다고 합니다. (현재 그의 나이는 63세)

 

(캠브리지 뉴스, 11월 13일 2009) 원문은 여기

 

캠브리지 뉴스에 실린 인터뷰에서는 루카스좌 교수가 되면서 얻게 되는 1500만 유로 (약 27억원) 의 연구비를 어떻게 쓸 건지 고민이라는군요. 다른 분야의 연구비에 비하면 싸다고 말하는데 이론에서 그 정도의 연구비는 정말 큰 거죠. 그는 이 연구비를 끈이론의 응용에 투자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2009년 11월 17일 화요일

루카스좌 교수

 

개인적인 일로 오랫동안 블로그를 찾아오지 못했습니다. 제가 없는 100일 동안 동안 잡초(?)가 좀 자랐군요. 잡초를 제거하고 다시 이야기를 포스트합니다.

 

지난 10월말 영국의 캠브리지에서 호킹의 은퇴 소식이 나왔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호킹은 캠브리지 대학, 수학과의 루카스 석좌교수로 재직 했는데요, 내년 1월 67세가 됨에따라 대학교의 규정에 의하여 2009년 9월 정년 퇴임을 하였습니다. (언론 보도: 캐나다 cbc, 영국 BBC, 한겨레 신문) 정년후에도 명예교수 (Professor Emeritus)로 연구를 계속할 것이며 또 캐나다 온타리오에 위치한 Perimeter 연구소의 석좌 연구원으로  활동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호킹의 후임으로는 초끈이론의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이 임명되었군요. Wikipedia에 나온 그린의 약력은 이렇습니다.

 

  • 1946년 5월 22일 영국 런던에서 출생
  • 캠브리지에서 이론 물리로 학사 (1967년)
  • 소립자 물리로 박사 (1970년)
  • 포스트닥터: 프린스턴, 캠브리지, 옥스포드
  • 1978-1993: 런던대학교 (Queen Mary) Lecturer and Professor
  • 1993- : 캠브리지대학에서 이론 물리의 존 험프리 플러머 석좌교수

수상경력: 영국 Institute of Physics의 디락 메달, 맥스웰 메달, 이태리 ICTP의 디락 메달, 미국 물리학회의 대니 하인만 상

1989년 왕립학회 회원, 150개 이상의 연구 논문

 

참고로 루카스 석좌교수는 지금까지 모두 17명이 있었고 그린은 18대 루카스 석좌교수가 됩니다. 아래 표에서 연도는 루카스 석좌교수로 임명된 해를 나타냅니다.

 

  1. 1664: Isaac Barrow
  2. 1669: Isaac Newton (모두가 다 아는 뉴턴경)
  3. 1702: William Whiston
  4. 1711: Nicholas Saunderson
  5. 1739: John Colson
  6. 1760: Edward Waring
  7. 1798: Isaac Milner
  8. 1820: Robert Woodhouse
  9. 1822: Thomas Turton
  10. 1826: George Biddell Airy (Airy function의 에어리)
  11. 1828: Charles Babbage (컴퓨터 역사에서 항상 거론되는 배비지)
  12. 1839: Joshua King
  13. 1849: George Gabriel Stokes (유체역학, Stokes' theorem의 스톡스)
  14. 1903: Joseph Larmor
  15. 1932: Paul Dirac (모두가 다 아는 디락)
  16. 1969: James Lighthill
  17. 1979: Stephen Hawking
  18. 2009: Michael Greem

 

모르는 사람의 이름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도 많이 보입니다. 루카스 석좌 교수의 공식 홈페이지는 이곳에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


2009년 7월 7일 화요일

쇤 사건 2

 

두 논문의 그림이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고 쇤은 그림이 실수로 섞여서 들어갔다고 말하고 에라텀을 냈습니다. 한 번의 실수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집니다. 코넬대학의 폴 맥유엔이 쇤의 이전 논문인 사이언스 287, 1022 (2000)에서 같은 꼬리 모양의 그림을 찾은 것입니다.


<출처: J. H. Schön, S. Berg, Ch. Kloc, and B. Batlogg, Science 287, 1022 (2000)>

이 그림 또한 앞의 두 그림과 아주 흡사합니다. 앞의 두 그림의 경우 x-축의 범위는 같고 y-축의 범위는 하나는 0-0.2, 다른 하나는 0-2.0로 10배라 비슷하게 보입니다. 따라서 실수할 확률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그림은 x-축은 0-10, y-축은 0-10으로 앞의 두 경우와 확연히 다릅니다. 이제 세 그림을 같이 놓으면 이렇게 됩니다.


<출처: Physicstoday.org>

 

세 그림의 유사성이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이는 단순한 실수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맥유엔과 리디아 손은 비슷한 그림을 다른 논문에서 더 찾아냈습니다. 그래서 위와 유사한 그림이 모두 사이언스, 네이쳐,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등 세 개의 저널에서 실린 모두 여섯 개의 논문에서 발견됩니다. 이 사실에 과학계는 경악합니다. 더구나 위 논문들의 상당수는 벨 연구소의 저명한 학자인 배트록 (Bertram Batlogg, 이 당시에는 벨 연구소를 떠나 스위스의 ETH Zuerich로 옮겨 있었습니다.) 이 공동 저자로 참여해 있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컸고 쇤은 전도 유망한 젊은 학자였기에 많은 이들은 저자들의 명성에 흠이되지 않는 이성적이고 적절한 설명이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벨 연구소의 수뇌부에게 들어가고 물리과학부의 부소장 체리 머레이는 2002년 5월 스탠퍼드 대학의 말콤 비즐리 (Malcolm Beasley)에게 이 사건의 조사를 의뢰하게 됩니다. 비즐리는 벨 연구소 내부인사와 외부인사를 아우르는 위원회를 조직하고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즐리 위원회는 벨 연구소 내부와 외부로 부터 많은 양의 정보를 제공 받았습니다. 벨 연구소는 국가 기관의 연구비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연방 정부의 과학 부정행위에 관한 정책을 따를 의무는 없지만 벨 연구소와 비즐리 위원회는 연방 규칙에 따라 조사를 시행하고 공정함과 철저함을 원칙으로 이 사건을 끝까지 파헤치기로 합니다. 조사 기간 동안 위원회는 벨 연구소의 어느 장소나 들어갈 수 있고 어떤 책이나 보고서를 열람할 수 있으며 연구소측의 철저한 협조를 약속 받습니다. 이제 유기 화합물로 초전도체, 레이저, 조세프슨-정크션, 단분자 트랜지스터를 만들 수 있다는 정말로 획기적인 벨 연구소의 연구는 조작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철저하지 못한 실험 노트 정리와 실수로 여겨졌던 사건이 논문 조작이라는 대형 사건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비즐리 위원회는 첫번째 조사를 6월 말에 마치고 2002년 9월 127 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이 보고서는 벨 연구소의 약속대로 곧바로 일반에게 공개되었습니다. 비즐리 위원회는 20명의 공동저자를 포함한 25개의 논문에서 24건의 혐의를 조사하였습니다. 이 모든 논문의 공통점은 바로 얀 헨드릭 쇤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쇤 혼자 샘플을 만들고 측정을 했으며 (초벌) 논문을 썼습니다. 더구나 샘플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기계는 벨 연구소가 아니라 쇤이 박사학위를 한 독일의 콘스탄츠 대학에 있었습니다. 쇤은 그 기계가 더 익숙하다는 이유로 벨 연구소의 기계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죠? 아무래도 대학교의 기계보다는 벨 연구소의 기계가 더 좋을 것 같은데.) 비즐리 위원회는  24건의 혐의중 16건에 대해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위원회의 조사는 벨 연구소의 적극적 협조에도 불구하고 쉽지는 않았습니다. 원 데이터를 요구하는 위원회에게 쇤은 데이터 파일을 더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그는 그가 가지고 있던 낡은 컴퓨터의 낮은 하드디스크 용량때문에 지워버렸다고 답합니다. (벨 연구소에 있는 최첨단 컴퓨터는 왜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는 또 다시 시험해볼 수 있는 샘플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실험도중이나 이사하면서 파손되었답니다. (어디서 많이 들은 듯 하죠?) 더구나 콘스탄츠에 있던 기계도 더 이상 샘플을 생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위원회는 다른 보든 자료를 긁어 모았습니다. 컴퓨터에 남아 있던 논문의 초고 파일, 그림 파일, 프리젠테이션 파일등 면밀히 검토하였습니다. 그리고 논문 조작의 결정적 증거들을 찾아 냅니다. 쇤만 똑똑한 게 아니거든요.




2009년 7월 2일 목요일

피지컬 리뷰 레터스 (PRL) 에서 온 이메일

 

요즘 학술잡지를 보면 과거에 비해 그 종류가 아주 많아졌습니다. 논문의 수도 증가하고 따라서 저널도 더 두꺼워젔습니다. 그리고 이는 인용회수의 인플레이션도 가지고 왔습니다. 그 많은 저널들은 그 급에 따라 분류가 됩니다. 물리학쪽에서는 미국적 시각으로 보면 주간 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가 가장 권위있는 저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상당히 미국적인 시각입니다. 하지만 다른 저널에 비해 높은 임팩트 팩터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물리학, 특히 응집물질쪽에서 쏟아져 나오는 논문들로 인해 피지컬 리뷰 레터스의 두께가 과거에 비해 굉장히 두꺼워졌습니다. 원래 피지컬 리부 레터스는 한 눈문의 길이가 4쪽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저자의 수가 100명이 넘는 대규모 실험 그룹의 경우는 제목과 저자가 나온 부분이 한 페이지를 쉽게 넘어가기 때문에 6쪽까지 예외적으로 허용합니다.) 따라서 과거에는 두께가 얇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요즘에는 옆면에 잡지 이름을 넣을 정도로 두꺼워졌습니다. 현재 1주일에 약 80편 가량의 논문이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실립니다. 며칠 전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서는 편집자 주를 통해 심사를 더 강화해서 편수를 줄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러면 임팩트 팩터가 더 높아질 지도 모르겠네요.

 

---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서 온 이메일 ---

We at Physical Review Letters always look for ways to do better at our core mission, which 
is to provide the physics community with accounts of crucial research in a convenient
format. PRL at present publishes about 80 Letters per week, and we Editors, and many
readers of PRL, have concluded that these cannot all discuss crucial research, and that
it is too large a number to be convenient. This view is also held by our editorial board
and by others, as we know from a wide range of exchanges with our colleagues.

As a result we will reaffirm the standards for acceptance for PRL. The criteria will not
change fundamentally, but we will work to apply them with increased rigor. To meet the
PRL criteria of importance and broad interest, a Letter must

1) substantially advance a particular field; or

2) open a significant new area of research; or

3) solve a critical outstanding problem, or make a significant step toward solving such
a problem; or

4) be of great general interest, based, for example, on scientific aesthetics.

We are confident that this initiative will lead to a journal that is better able to
attract the best papers, because it will provide a more exclusive platform for those
papers, and thus impart a higher profile to the most significant results. We also
anticipate that a renewed focus on the characteristics that underlie importance and
broad interest, as listed above, will lead to a more accurate selection process. As
we reinvigorate the PRL criteria, we will also make every effort to make decisions
promptly. This will enable results to reach the community in a timely fashion,
whether in PRL or in a more suitable venue.

For this effort to be successful, authors must submit only results that meet at least
one of the above criteria. Referees must judge breadth of interest based on impact both
in the specific field and across field boundaries, and must support favorable
recommendations with substantive reasons to publish. Editors will be more discriminating
in both their own evaluation of manuscripts and their interpretation of referee reports.
In support of these efforts we will revise our statement of Policies and Practices and
our Referee Response Form.

We will carefully monitor the impact that application of reaffirmed standards has on
the physics community. The process will necessarily be gradual, as authors, referees,
Editors, and Divisional Associate Editors become familiar with more rigorous application
of PRL requirements. This will also allow time to correct for any unexpected deleterious
effects. Although we do not plan a specific numerical target, we do wish to make a
significant change in the number of papers we publish.

We note that there are many papers that are valid and important in their area, but
are not at the level of importance or broad interest that is necessary for PRL.
There are also papers of great importance for their field and/or of broad interest
that simply cannot be presented in a letter format. The Physical Review journals
have high standards and unmatched reputations and are natural venues for such
papers.

We know that these changes will lead to some disappointments. We are convinced, however,
that a more selective PRL will communicate the best physics more efficiently.

Sincerely,

The Editors

Please see our Editorial: Improving PRL

http://prl.aps.org/edannounce/PhysRevLett.103.010001




2009년 6월 30일 화요일

쇤 사건 1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mahabanya님께서 숙제를 주셨군요. 조금 생각해야 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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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헨드릭 쇤 (Jan Hendrik Schoen) 사건은 아주 유명한 사건으로 과학에서 부정행위를 논할 때 항상 등장하는 사건으로 여러 책에서 그 사건의 시작과 진행 그리고 결말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이 사건을 다시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쇤은 부정행위가 밝혀지기 전까지 언젠가는 노벨상을 수상할 강력한 후보였으나 부정행위가 탄로나면서 모든게 거품이되어 사라져버렸습니다.

 

쇤은 1970년 독일에서 출생하여 응집물질과 나노기술을 연구한 물리학자 입니다. 그는 1997년 독일의 콘스탄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곧바로 미국의 유명한 벨 연구소 (Bell Labs)으로 들어갑니다. 그 후 그는 엄청난 논문을 엄청난 속도로 쏟아냅니다. 그로 인해 2001년 오토-클룽-베버뱅크 상과 브라운쉬바이크 상을 수상하고 2002년에는 재료과학회의 뛰어난 젊은 과학자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연구가 어느 정도였냐면 가장 논문을 많이 쓴 2001년에는 평균 8일에 한편꼴로 논문을 썼습니다. (그 해에 약 45편의 논문을 쓴 셈입니다. 훗날 사이언스가 철회한 쇤의 논문은 8편, 네이쳐가 취소한 논문은 7편입니다.) 특히 네이쳐에 기고한 논문은 분자 규모에서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이는 학계는 물론 산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킵니다. 실리콘을 이용한 반도체 기술이 더 이상 크기를 축소하기 어려운 경지까지 도달하여 이른바 무어의 법칙이 깨지게 되었는데 분자를 이용한 기술이 가능하면 무어의 법칙은 다시 살아나고 지금보다 훨씬 작은 전자기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논문은 실리콘의 시대를 끝내고 분자단위의 트랜지스터 시대의 문을 열어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을 여는 것입니다. 계속 승승장구한 그는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렸습니다. 그가 손대는 실험은 항상 성공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논문을 시작으로 정점에 올라있던 그의 이력에 먹구름이 닥쳐옵니다. 항상 그렇듯 작은 곳에서부터 문제가 터져 나옵니다.

 

쇤의 논문은 아주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같은 실험 결과를 재연하여 그 논문을 검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런 중요한 실험은 처음이 아닌 두 번째 성공 사례라해도 좋은 저널에 실릴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 결과를 가른 그룹이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은 그 발견을 확실히 해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가 빨리 똑같은 결과를 재연하는가기 위한 경쟁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쇤의 실험과 같은 조건을 주고 같은 샘플로 실험을 했지만 쇤의 결과를 재연하는 데는 모든 그룹이 실패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누구도 쇤의 논문이 가짜라거나 부정하다고 이의를 제기할수는 없습니다. 실험에는 많은 노하우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쇤의 실험은 이미 논문으로 출판이 되었기 때문에 그 결과를 다시 만들어 내는데 실패한것은 우선 후속 연구자가 해결할 문제인거죠. 쇤은 자신의 논문과 실험을 방어할 의무는 있지만 후속 연구자의 문제나 실수를 찾아내거나 노하우를 가르쳐 줄 의무는 없습니다.


쇤 사건은 쇤의 논문에 실린 한 그래프에서 시작됩니다. 쇤이 논문을 발표한 후 벨 연구소내부에서는 쇤이 쓴 논문중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의 그림과 네이쳐에 실린 논문의 그림이 아주 비슷하다는 소문이 나돕니다. (아래 그림)  두 그림을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논문을 읽을때 중요한 점만을 보기 때문에 그런 꼬리 부분은 눈여겨 보지않으면 알기 힘듭니다.



<왼쪽 그림의 출처는 J. H. Schoen, H. Meng, and Z. Bao, Nature 413, 713 (2001),

오른쪽 그림의 출처는 J. H. Schoen, H. Meng, and Z. Bao, Science 294, 2138 (2001).>

 

두 그림이 아주 비슷합니다. 특히 꼬리 부분 (x 축의 오른쪽 끝 부분)을 확대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두 그림의 유사성이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이는 쇤의 실험을 재연하기위해 노력하던 프린스턴대학의 리디아 손에게 알려졌고 저널의 에디터에게도 전달됩니다. 에디터는 이를 논문의 주저자인 쇤에게 통보합니다. 두 논문의 주저자인 쇤은 곧 데이터가 섞여서 그래프가 잘못 나왔다고 잘못을 시인하고 교정된 그래프를 보내 사이언스지에 에러텀를 냅니다. 물론 그 논문의 주 내용과 결론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이언스 296, 1400 (2002)에 실린 사이언스 294, 2138 (2001)의 수정된 그림 (오른쪽)>

 

이제 두 그림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논문을 쓸 때 이런 커다란 실수를 하면 안되죠. 하지만 사실 논문을 많이 쓰다 보면 주의력이 떨어져 그런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네이쳐나 사이언스같은 저널에 내는 논문이라도 말이죠. 더구나 쇤은 두 저널에 아주 많은 논문을 실었으니까 실수도 가능할겁니다. 실수로 그림이 잘못 올라간 경우에는 이렇게 에라텀을 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비난을 받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 실수가 고의가 아닐 때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선의의 실수로 인한) 에러타가 자꾸 나오게되면 학자로서의 신용도가 떨어지므로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합니다. 이렇게 마무리가 될 것같았는데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