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물리학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물리학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09년 7월 7일 화요일

쇤 사건 2

 

두 논문의 그림이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고 쇤은 그림이 실수로 섞여서 들어갔다고 말하고 에라텀을 냈습니다. 한 번의 실수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집니다. 코넬대학의 폴 맥유엔이 쇤의 이전 논문인 사이언스 287, 1022 (2000)에서 같은 꼬리 모양의 그림을 찾은 것입니다.


<출처: J. H. Schön, S. Berg, Ch. Kloc, and B. Batlogg, Science 287, 1022 (2000)>

이 그림 또한 앞의 두 그림과 아주 흡사합니다. 앞의 두 그림의 경우 x-축의 범위는 같고 y-축의 범위는 하나는 0-0.2, 다른 하나는 0-2.0로 10배라 비슷하게 보입니다. 따라서 실수할 확률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그림은 x-축은 0-10, y-축은 0-10으로 앞의 두 경우와 확연히 다릅니다. 이제 세 그림을 같이 놓으면 이렇게 됩니다.


<출처: Physicstoday.org>

 

세 그림의 유사성이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이는 단순한 실수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맥유엔과 리디아 손은 비슷한 그림을 다른 논문에서 더 찾아냈습니다. 그래서 위와 유사한 그림이 모두 사이언스, 네이쳐,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등 세 개의 저널에서 실린 모두 여섯 개의 논문에서 발견됩니다. 이 사실에 과학계는 경악합니다. 더구나 위 논문들의 상당수는 벨 연구소의 저명한 학자인 배트록 (Bertram Batlogg, 이 당시에는 벨 연구소를 떠나 스위스의 ETH Zuerich로 옮겨 있었습니다.) 이 공동 저자로 참여해 있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컸고 쇤은 전도 유망한 젊은 학자였기에 많은 이들은 저자들의 명성에 흠이되지 않는 이성적이고 적절한 설명이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벨 연구소의 수뇌부에게 들어가고 물리과학부의 부소장 체리 머레이는 2002년 5월 스탠퍼드 대학의 말콤 비즐리 (Malcolm Beasley)에게 이 사건의 조사를 의뢰하게 됩니다. 비즐리는 벨 연구소 내부인사와 외부인사를 아우르는 위원회를 조직하고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즐리 위원회는 벨 연구소 내부와 외부로 부터 많은 양의 정보를 제공 받았습니다. 벨 연구소는 국가 기관의 연구비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연방 정부의 과학 부정행위에 관한 정책을 따를 의무는 없지만 벨 연구소와 비즐리 위원회는 연방 규칙에 따라 조사를 시행하고 공정함과 철저함을 원칙으로 이 사건을 끝까지 파헤치기로 합니다. 조사 기간 동안 위원회는 벨 연구소의 어느 장소나 들어갈 수 있고 어떤 책이나 보고서를 열람할 수 있으며 연구소측의 철저한 협조를 약속 받습니다. 이제 유기 화합물로 초전도체, 레이저, 조세프슨-정크션, 단분자 트랜지스터를 만들 수 있다는 정말로 획기적인 벨 연구소의 연구는 조작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철저하지 못한 실험 노트 정리와 실수로 여겨졌던 사건이 논문 조작이라는 대형 사건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비즐리 위원회는 첫번째 조사를 6월 말에 마치고 2002년 9월 127 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이 보고서는 벨 연구소의 약속대로 곧바로 일반에게 공개되었습니다. 비즐리 위원회는 20명의 공동저자를 포함한 25개의 논문에서 24건의 혐의를 조사하였습니다. 이 모든 논문의 공통점은 바로 얀 헨드릭 쇤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쇤 혼자 샘플을 만들고 측정을 했으며 (초벌) 논문을 썼습니다. 더구나 샘플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기계는 벨 연구소가 아니라 쇤이 박사학위를 한 독일의 콘스탄츠 대학에 있었습니다. 쇤은 그 기계가 더 익숙하다는 이유로 벨 연구소의 기계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죠? 아무래도 대학교의 기계보다는 벨 연구소의 기계가 더 좋을 것 같은데.) 비즐리 위원회는  24건의 혐의중 16건에 대해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위원회의 조사는 벨 연구소의 적극적 협조에도 불구하고 쉽지는 않았습니다. 원 데이터를 요구하는 위원회에게 쇤은 데이터 파일을 더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그는 그가 가지고 있던 낡은 컴퓨터의 낮은 하드디스크 용량때문에 지워버렸다고 답합니다. (벨 연구소에 있는 최첨단 컴퓨터는 왜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는 또 다시 시험해볼 수 있는 샘플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실험도중이나 이사하면서 파손되었답니다. (어디서 많이 들은 듯 하죠?) 더구나 콘스탄츠에 있던 기계도 더 이상 샘플을 생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위원회는 다른 보든 자료를 긁어 모았습니다. 컴퓨터에 남아 있던 논문의 초고 파일, 그림 파일, 프리젠테이션 파일등 면밀히 검토하였습니다. 그리고 논문 조작의 결정적 증거들을 찾아 냅니다. 쇤만 똑똑한 게 아니거든요.




2009년 7월 2일 목요일

피지컬 리뷰 레터스 (PRL) 에서 온 이메일

 

요즘 학술잡지를 보면 과거에 비해 그 종류가 아주 많아졌습니다. 논문의 수도 증가하고 따라서 저널도 더 두꺼워젔습니다. 그리고 이는 인용회수의 인플레이션도 가지고 왔습니다. 그 많은 저널들은 그 급에 따라 분류가 됩니다. 물리학쪽에서는 미국적 시각으로 보면 주간 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가 가장 권위있는 저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상당히 미국적인 시각입니다. 하지만 다른 저널에 비해 높은 임팩트 팩터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물리학, 특히 응집물질쪽에서 쏟아져 나오는 논문들로 인해 피지컬 리뷰 레터스의 두께가 과거에 비해 굉장히 두꺼워졌습니다. 원래 피지컬 리부 레터스는 한 눈문의 길이가 4쪽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저자의 수가 100명이 넘는 대규모 실험 그룹의 경우는 제목과 저자가 나온 부분이 한 페이지를 쉽게 넘어가기 때문에 6쪽까지 예외적으로 허용합니다.) 따라서 과거에는 두께가 얇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요즘에는 옆면에 잡지 이름을 넣을 정도로 두꺼워졌습니다. 현재 1주일에 약 80편 가량의 논문이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실립니다. 며칠 전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서는 편집자 주를 통해 심사를 더 강화해서 편수를 줄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러면 임팩트 팩터가 더 높아질 지도 모르겠네요.

 

---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서 온 이메일 ---

We at Physical Review Letters always look for ways to do better at our core mission, which 
is to provide the physics community with accounts of crucial research in a convenient
format. PRL at present publishes about 80 Letters per week, and we Editors, and many
readers of PRL, have concluded that these cannot all discuss crucial research, and that
it is too large a number to be convenient. This view is also held by our editorial board
and by others, as we know from a wide range of exchanges with our colleagues.

As a result we will reaffirm the standards for acceptance for PRL. The criteria will not
change fundamentally, but we will work to apply them with increased rigor. To meet the
PRL criteria of importance and broad interest, a Letter must

1) substantially advance a particular field; or

2) open a significant new area of research; or

3) solve a critical outstanding problem, or make a significant step toward solving such
a problem; or

4) be of great general interest, based, for example, on scientific aesthetics.

We are confident that this initiative will lead to a journal that is better able to
attract the best papers, because it will provide a more exclusive platform for those
papers, and thus impart a higher profile to the most significant results. We also
anticipate that a renewed focus on the characteristics that underlie importance and
broad interest, as listed above, will lead to a more accurate selection process. As
we reinvigorate the PRL criteria, we will also make every effort to make decisions
promptly. This will enable results to reach the community in a timely fashion,
whether in PRL or in a more suitable venue.

For this effort to be successful, authors must submit only results that meet at least
one of the above criteria. Referees must judge breadth of interest based on impact both
in the specific field and across field boundaries, and must support favorable
recommendations with substantive reasons to publish. Editors will be more discriminating
in both their own evaluation of manuscripts and their interpretation of referee reports.
In support of these efforts we will revise our statement of Policies and Practices and
our Referee Response Form.

We will carefully monitor the impact that application of reaffirmed standards has on
the physics community. The process will necessarily be gradual, as authors, referees,
Editors, and Divisional Associate Editors become familiar with more rigorous application
of PRL requirements. This will also allow time to correct for any unexpected deleterious
effects. Although we do not plan a specific numerical target, we do wish to make a
significant change in the number of papers we publish.

We note that there are many papers that are valid and important in their area, but
are not at the level of importance or broad interest that is necessary for PRL.
There are also papers of great importance for their field and/or of broad interest
that simply cannot be presented in a letter format. The Physical Review journals
have high standards and unmatched reputations and are natural venues for such
papers.

We know that these changes will lead to some disappointments. We are convinced, however,
that a more selective PRL will communicate the best physics more efficiently.

Sincerely,

The Editors

Please see our Editorial: Improving PRL

http://prl.aps.org/edannounce/PhysRevLett.103.010001




2009년 6월 30일 화요일

쇤 사건 1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mahabanya님께서 숙제를 주셨군요. 조금 생각해야 할것 같습니다.

--------------------------------------------------------------------


얀 헨드릭 쇤 (Jan Hendrik Schoen) 사건은 아주 유명한 사건으로 과학에서 부정행위를 논할 때 항상 등장하는 사건으로 여러 책에서 그 사건의 시작과 진행 그리고 결말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이 사건을 다시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쇤은 부정행위가 밝혀지기 전까지 언젠가는 노벨상을 수상할 강력한 후보였으나 부정행위가 탄로나면서 모든게 거품이되어 사라져버렸습니다.

 

쇤은 1970년 독일에서 출생하여 응집물질과 나노기술을 연구한 물리학자 입니다. 그는 1997년 독일의 콘스탄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곧바로 미국의 유명한 벨 연구소 (Bell Labs)으로 들어갑니다. 그 후 그는 엄청난 논문을 엄청난 속도로 쏟아냅니다. 그로 인해 2001년 오토-클룽-베버뱅크 상과 브라운쉬바이크 상을 수상하고 2002년에는 재료과학회의 뛰어난 젊은 과학자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연구가 어느 정도였냐면 가장 논문을 많이 쓴 2001년에는 평균 8일에 한편꼴로 논문을 썼습니다. (그 해에 약 45편의 논문을 쓴 셈입니다. 훗날 사이언스가 철회한 쇤의 논문은 8편, 네이쳐가 취소한 논문은 7편입니다.) 특히 네이쳐에 기고한 논문은 분자 규모에서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이는 학계는 물론 산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킵니다. 실리콘을 이용한 반도체 기술이 더 이상 크기를 축소하기 어려운 경지까지 도달하여 이른바 무어의 법칙이 깨지게 되었는데 분자를 이용한 기술이 가능하면 무어의 법칙은 다시 살아나고 지금보다 훨씬 작은 전자기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논문은 실리콘의 시대를 끝내고 분자단위의 트랜지스터 시대의 문을 열어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을 여는 것입니다. 계속 승승장구한 그는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렸습니다. 그가 손대는 실험은 항상 성공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논문을 시작으로 정점에 올라있던 그의 이력에 먹구름이 닥쳐옵니다. 항상 그렇듯 작은 곳에서부터 문제가 터져 나옵니다.

 

쇤의 논문은 아주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같은 실험 결과를 재연하여 그 논문을 검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런 중요한 실험은 처음이 아닌 두 번째 성공 사례라해도 좋은 저널에 실릴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 결과를 가른 그룹이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은 그 발견을 확실히 해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가 빨리 똑같은 결과를 재연하는가기 위한 경쟁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쇤의 실험과 같은 조건을 주고 같은 샘플로 실험을 했지만 쇤의 결과를 재연하는 데는 모든 그룹이 실패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누구도 쇤의 논문이 가짜라거나 부정하다고 이의를 제기할수는 없습니다. 실험에는 많은 노하우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쇤의 실험은 이미 논문으로 출판이 되었기 때문에 그 결과를 다시 만들어 내는데 실패한것은 우선 후속 연구자가 해결할 문제인거죠. 쇤은 자신의 논문과 실험을 방어할 의무는 있지만 후속 연구자의 문제나 실수를 찾아내거나 노하우를 가르쳐 줄 의무는 없습니다.


쇤 사건은 쇤의 논문에 실린 한 그래프에서 시작됩니다. 쇤이 논문을 발표한 후 벨 연구소내부에서는 쇤이 쓴 논문중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의 그림과 네이쳐에 실린 논문의 그림이 아주 비슷하다는 소문이 나돕니다. (아래 그림)  두 그림을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논문을 읽을때 중요한 점만을 보기 때문에 그런 꼬리 부분은 눈여겨 보지않으면 알기 힘듭니다.



<왼쪽 그림의 출처는 J. H. Schoen, H. Meng, and Z. Bao, Nature 413, 713 (2001),

오른쪽 그림의 출처는 J. H. Schoen, H. Meng, and Z. Bao, Science 294, 2138 (2001).>

 

두 그림이 아주 비슷합니다. 특히 꼬리 부분 (x 축의 오른쪽 끝 부분)을 확대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두 그림의 유사성이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이는 쇤의 실험을 재연하기위해 노력하던 프린스턴대학의 리디아 손에게 알려졌고 저널의 에디터에게도 전달됩니다. 에디터는 이를 논문의 주저자인 쇤에게 통보합니다. 두 논문의 주저자인 쇤은 곧 데이터가 섞여서 그래프가 잘못 나왔다고 잘못을 시인하고 교정된 그래프를 보내 사이언스지에 에러텀를 냅니다. 물론 그 논문의 주 내용과 결론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이언스 296, 1400 (2002)에 실린 사이언스 294, 2138 (2001)의 수정된 그림 (오른쪽)>

 

이제 두 그림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논문을 쓸 때 이런 커다란 실수를 하면 안되죠. 하지만 사실 논문을 많이 쓰다 보면 주의력이 떨어져 그런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네이쳐나 사이언스같은 저널에 내는 논문이라도 말이죠. 더구나 쇤은 두 저널에 아주 많은 논문을 실었으니까 실수도 가능할겁니다. 실수로 그림이 잘못 올라간 경우에는 이렇게 에라텀을 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비난을 받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 실수가 고의가 아닐 때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선의의 실수로 인한) 에러타가 자꾸 나오게되면 학자로서의 신용도가 떨어지므로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합니다. 이렇게 마무리가 될 것같았는데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집니다.

 

 

 


2009년 6월 24일 수요일

유럽 핵물리학의 장기 연구 계획

 

이번에는 유럽 핵물리학계의 장기 연구 계획을 소개합니다. 이 보고서는 2004년 발간된 것으로 미국의 보고서보다는 약 4년 먼저 나온 것입니다. 유럽은 미국과 함께 과학 분야를 선도하는데 미국과의 차이는 한 국가가 아니라 여러 나라가 연합하여 계획을 작성합니다. 이 보고서 또한 핵물리학 유럽 공동 연구 위원회 (NuPECC, Nuclear Physics European Collaboration Committee)의 이름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유럽과 미국의 보고서는 비슷한 구도로 되어있고 다루는 내용도 비슷합니다. 페이지수도 183쪽과 184쪽으로  한 페이지밖에 차이나지 않습니다. 미국의 보고서는 장기 연구를 크게 네 가지로 잡은 반면 유럽은 다섯 가지를 잡았습니다. 내용은 비슷한데 유럽의 보고서는 (1) 양자색역학(QCD), (2) 핵물질의 상 (phase), (3) 핵의 구조, (4) 우주에서의 핵물리, (5) 근본 힘과 응용, 이 다섯 가지를 주요 분야로 택했습니다. 그 동안 이루어진 연구 성과로는 당연히 유럽에서 수행된 실험과 이론 연구를 위주로 소개합니다. 그리고 유럽각국의 연구소와 주연구과제를 설명하고 결론으로 몇 가지 제안을 합니다. 유럽의 연구소들은 다음에 소개하고 먼저 이 보고서의 몇 부분만을 간추렸습니다.

 

(일반적인 추천사항)

NuPECC는 현존하는 경쟁력이 있는 렙톤, 양성자, 안정된 동위원소, 방사성 이온 빔의 장치를 이용한 연구를 완전히 개발하기를 추천한다.

이는 중요한 물리적 발견 외에도 장래의 빔 생성과 검출기를 위한 R&D가 될 것이며 차세대 물리학자들을 위한 교육이 될 것이다.


LHC의 완공에 맞추어 ALICE 검출기를 제 떼에 빨리 완성하기를 추천한다.

LHC의 중이온 프로그램에서 쿼크-글루온 플라즈마의 연구는 ALICE에 의해 실행된다. 이는 저번 장기 계획에서 최우선 순위로 추천한 항목이다.

 

현존하거나 혹은 장래의 실험으로 부터 제기될 근본 문제를 다룰 이론 분야의 발전을 위해 각국의 이론 그룹을 강화시켜야한다.

이탈리아 트렌토에 위치한 ECT* 센터가 핵물리 이론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특히 핵물리와 강입자 물리의 결합에 큰 공헌을 하였고 이 센터에 대한 지원은 계속되고 확대되어야한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각 대학교에서는 이론 분야의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다. 이 장기계획에서 제시하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활발하고 즉각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핵물리 교양교육을 강화해야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세부적인 추천사항)

독일 담쉬타트의 GSI 연구소에 지어질 국제 프로젝트인 FAIR (Facility for Antiproton and Ion Research)의 건설을 최우선으로 할 것을 추천한다.

이 새로운 국제 공동 장치는 핵물리의 여러 세부 분야의 연구에 새로운 기회를 줄 것이다. IFF (In-Flight Fragmentation)을 사용하는 이 가속기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계획중이거나 건설 중인 가속기보다 더 나은 성능을 가지고 있다. 낮은 에너지부터 높은 에너지 그리고 새로운 스토리지 링 등으로 무장한 이 가속기는 핵구조와 천체핵물리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소가 될 것이다. 특히 안정된 부분에서 멀리 떨어진 오직 짧은 시간에만 존재하는 이상한(exotic) 원자핵을 다루는 연구에서 세계적 선도연구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고에너지 고강도의 중이온 빔은 농축된 중입자 물질을 연구하는데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고에너지 스토리지 링 (HESR, High Energy Storage Ring) 의 양질의 반양성자 빔은 계획 중인 검출기 PANDA와 함께 QCD에 의해 예측된 새로운 강입자 상태를 찾는 기회를 줄 것이다.

 

EURISOL의 건설에 GSI 다음의 최우선권을 주도록 추천한다.

방사성 빔을 만드는 ISOL (Isotope Separation On-Line) 방식은 IFF 방식을 보완하는 방식이다. 제 1세대 ISOL 방식의 가속기는 첫 번째 결과를 내기 시작했고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차세대 ISOL 방식의 방사능 이온 빔 (RIB, Radioactive Ion Beam)을 생산할 EURISOL (EUropean ISOL)은, 2013년 이후, 현존의 가속기보다 강도나 빔 종류에 있어 10배 이상의 능력을 갖는다. EURISOL의 건설 시간표로 인해 생기는 제1세대 ISOL과 EURISOL의 갭을 메꾸기위해 제2세대 ISOL 의 건설을 촉구한다. 이는 현재 계획중이거나 건설 중인 가속기로 프랑스 GANIL의 SPIRAL2, 이태리 LNL의 SPES, 스위스 CERN의 REX-ISOLDE 업그레이드와 독일 뮌헨의 MAFF등이다.

 

이태리 그란 사소 (Gran Sasso)의 지하 실험실에 고효율의 Ge 검출기를 갖춘 고 전류의 가벼운 이온 빔을 위한 5MV 가속기 설치에 우선권을 주도록 추천한다.

이는 현재 그란 사소에 있는 세계적으로 드문 시설의 늠력을 향상시키고 천체물리에서 중요한 반응을 실험실에서 연구할 기회를 제공한다.

 

수 GeV의 렙톤 충돌 실험은 아주 흥미롭고 중요하다. 이는 강입자의 구조와 QCD를 다양하게 테스트할 수 있게한다. 따라서 이 분야의 연구를 전 세계의 기존 또는 계획 중인 가속기를 이용해 국제 협력을 통해 강화해야한다.

 

AGATA의 건설과 이를 위한 R&D를 활발히 할 것을 촉구한다.

기존의 그리고 미래의 가속기를 환전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장비와 검출기의 성능 향상이 반드시 필요하다. 감마선 검출과 추적을 위한 고성능의 4\pi Ge-검출기인 AGATA 프로젝트는 유럽의 여러 연구소에서 진행 중인 핵과학의 여러 분야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NuPECC에 참여하고 있는 유럽의 국가들, 이미지 출처: www.nupecc.org>




2009년 6월 23일 화요일

논문을 레프리하면서...

 

논문을 레프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레프리 요청을 받았을 때는 괜히 우쭐해지곤 했는데, 모든 일이 그러하듯,  레프리도 자주 하다 보면 좀 시들해지거나 귀찮아진다. 논문의 레프리를 선정할 때 그 분야의 전문가를 고르지만 아무래도 내가 직접 했던 일이 아니면 참고문헌도 뒤져보고 공부를 좀 해야 한다. 물론 이는 레프리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고 레프리를 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과거에는 레프리가 제출된 논문을 가로채기도 했다는 전설도 있지만 요즘에는 논문을 무조건 arXiv.org에 먼저 올리기 때문에 originality를 훔치는 건 불가능하다. 참고 문헌을 뒤지는 또 다른 이유는 표절이다. 물론 표절된 논문을 참고문헌으로 적지는 않겠지만 참고문헌의 참고문헌을 찾으면 표절여부를 알 수 있다. 레프리하면서 또 점검하는 것은 저자(들)의 과거 논문이다. 이는 자기 표절을 찾기 위해서다. 그리고 논문의 질을 평가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새로운 방법으로 계산을 해서 논문을 쓰고 유사한 계산을 다른 대상에 적용하여 논문을 쓰는 경우 그 결과가 중요하다면 출판 가치가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단지 논문 수를 늘리기 위한 일이 된다. 이 경우 저널의 급을 생각해 출판을 추천하기도하고 리젝트하기도 한다. 며칠 전 유럽의 한 저널에 투고된 논문을 레프리 하였다. 논문의 저자는 혼자였고 (이름을 A라 하겠다.) 논문의 주제는 일견 괜찮아 보였으나 어딘지 엉성하였다.  SLAC 데이터베이스를 뒤져보니 역시나 논문 편수가 2-3개 밖에 안 되는 초보였다. 논문을 자세히 읽어본 후 이런 문제점을 발견했다.


<논문심사를 잘하면 이런 상도 받는다고 합니다. 이미지출처 : physics.fau.edu>

 

(1) 서론이 너무 엉성했다. 서론에는 이 일이 갖는 중요성, 다른 사람이 했던 일, 앞으로 본문에서 다룰 내용의 간단한 소개 등이 들어가야 한다. 페이지 수에 제한을 받지 않는 정규 논문의 경우 서론은 가능하면 자세히 쓰는 것도 좋다.  이 분야에서 중요한 문제와 현재까지 어떤 방법으로 사람들이 이 문제를 접근했는가 그리고 가능하면 각 방법의 중요한 포인트와 결론을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레터 형식의 논문은 이 내용을  줄이고 짧게 요약할 수 있으나 본질은 같다. 잘 쓰인 서론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고 인용되기도 쉽다. 하지만 A의 논문은 서론이 아주 짧았지만 양보다도 질이 너무 부실했다. 예를 들어, 이전의 일을 설명하지 않고 단지 "이 문제는 많은 관심을 끌었다.[1-10]" 이런 식이었다. 물론 이는 개인의 성향일 수도 있지만 이런 식의 서론은 적절치 않다.

 

(2) 본문에서 필요 없는 수식을 나열하였고 수식을 대부분 이전에 자신이 출판한 논문에서 가지고 왔다. 예를 들면 a,b,c라는 변수의 값을 정하기 위해 식 20여개를 사용했다. (따라서 \chi^2 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변수를 결정한다.) 하지만 논문에는 30여개의 수식이 나열되었다. 이는 이전의 논문에서 가져온 것이다. (물론 각 식이 완전히 같지는 않고 조금씩 다르다.) 변수 결정에 쓰이지 않은 수식을 나열한 것은 저자가 자신의 논문에 주의를 충분히 기울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족을 달면 연속되는 많은 수식을 본문에 쓰는 것은 논문의 논점을 흐리게 하기 쉽다. 차라리 그런 복잡한 수식은 본문의 토의에서 꼭 필요하지 않으면 논문 뒤의 아펜딕스로 옮기는 게 더 보기 좋다.

 

(3) 결론이 명확하지 않았다. 이 논문의 계산 결과를 표와 그림으로 주었으나 이 결과물들이 주는 결론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A는 같은 계산을 다른 모형을 써서 계산하여 이전에 출판하였다. 지금의 논문 결과는 이전과 좀 다르다. 다른 모형을 썼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어떤 무엇이 두 모형의 결과를 다르게 하는지 어느 결론이 더 신뢰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전혀 토의하지 않았다. 논문은 레포트가 아니다.

 

이런 문제점은 논문을 쓴 후 다른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리뷰를 부탁하면 쉽게 지적해 줄 수 있는 것들이다. 논문은 다른 사람에게 읽혀지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출판전에 가까운 사람에게 보이고 평가를 부탁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A의 논문에서는 그 외에도 전문적으로 세세한 분야에서 오류가 보였다. 미안하지만 에디터에게 보내는 A의 논문에 대한 내 추천은 '리젝트'일 수밖에.





2009년 6월 19일 금요일

핵물리학의 연구 방향 (제안)

 

앞에서 미국 핵물리 자문위원회 (NSAC)의 장기 연구 계획을 간단히 소개했습니다. 그 보고서는 지금까지의 주요 연구과제의 발전과정과 업적 그리고 앞으로의 주 연구 방향을 제시하며 이를 위한 4가지 주요 제안으로 마무리 됩니다. 향후 10년의 연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문위원회에서 결정한 제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퍼슨 연구소의 12 GeV 업그레이드를 지원해야한다.

이는 (1) 핵자의 구조, (2) 원자핵을 설명하는데 있어 강입자를 이용하는 것과 쿼크-글루온을 이용하는 것 사이의 관계, (3) 속박(confinement)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새로운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현대 핵물리학의 중요과제는 핵자와 핵의 구조와 상호작용을 양자색역학 (QCD)로 이해하는 것이다. 제퍼슨 연구소(JLAB)의 CEBAF (Continuous Electron Beam Accelerator Facility)는 이 연구에서 미국이 리더가 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JLAB 가속기의 에너지를 두 배로 늘리는 것은 핵자의 3차원 이미지를 가능케 하여 그 내부에 숨겨진 동역학을 이해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는 또 원자핵을 기술하는 데 있어서의 두 가지 방법, 즉 강입자를 이용하는 것과 쿼크-글루온을 이용하는 두 방법이 서로 어떻게 자연스럽게 연결되는가를 이해하게 해 줄 것이고 이상한 강입자 (exotic hadron)의 존재 유무를 확인시켜줄 것이다. 패리티 깨짐 (parity violation)을 이용해서, 이는 또 "표준모형을 넘어서는 물리학"을 낮은 에너지에서 연구하여 고에너지 스케일의 연구와 함께 이 분야에 기여할 것이다.

 

  <JLAB의 12 GeV 업그레이드 계획, 출처: www.jlab.org>

 희귀 동위원소 빔 시설 (FRIB, Facility for Rare Isotope Beams)을 건설해야한다.

이 시설은 핵 구조와 반응 그리고 천체물리연구에 대한 세계적 선도 연구 기관이 될 것이다. FRIB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동위원소는 원자핵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우주에서 원소의 생성과정을 밝히고 중성자 별 외곽에서의 물질을 이해하고 핵과학의 응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원자핵에 관한 완전한 이해와 통일된 기술 방법을 찾기 위한 로드맵을 가지고 있다. 오직 FRIB만이 제공할 수 있는 이상한 동위원소 (exotic isotope)에 대한 새로운 데이터가 원자핵을 뭉치게 하는 힘의 근원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는 물리이론의 유효성을 체크하고 핵의 구조와 반응을 함께 이해하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천체물리와 천문학에서의 발전은 희귀 동위원소에 대한 새롭고 정확한 정보가 필요한데 이는 핵의 안정성의 극한에 이르는 동위원소를 포함하고 있고 이에 관한 정보는 FRIB에서 최초로 제공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해서 우주의 화학적 역사와 별의 폭발에서 만들어지는 원소의 생성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희귀 동위원소는 자연의 근본적인 대칭성을 테스트하는 데에도 필요하고 기초 과학, 국가 안보,  응용분야를 비롯한 여러 학문 분야를 통합하여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필수적이다. 이 분야의 연구를 새로운 시대로 이끌기 위해서는 FRIB를 즉각 건설하는 게 필요하다. 이는 현재의 연구 장치인 NSCL, HRIBF, ATLAS와 함께 획기적인 연구를 수행할 것이다.

 <미시건 대학교에 새워질 FRIB, 출처: www.msu.edu>

 뉴트리노의 성질과 근본적인 대칭성을 연구할 실험 계획을 꾸준히 진행해야한다.

 

이 실험들은 뉴트리노의 성질과 아직은 발견하지 못한 시간 대칭성 (time-reversal symmetry)의 깨짐 그리고 기본 힘에 관한 새로운 표준 모형의 주요 종자가 되는 것들을 발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DUSEL (Deep Underground Science and Engineering Laboratory)의 건설은 이 분야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쥐는데 필수적이다. 태양, 실험실, 그리고 대기 중의 뉴트리노 실험에서 발견된 뉴트리노 진동은 우주에서 물질이 반물질보다 많다는 것과 함께 기본 힘에 관한 새로운 표준 모형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킨다. 핵물리는 뉴트리노를 동반하지 않는 이중 베타 붕괴와 전기 쌍극자 (electric dipole moment), 뉴트리노의 성질과 상호작용 결정 그리고 전기약력 현상에 대한 정밀한 데이터를 제공하여 새로운 표준모형의 대칭성을 발견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다. DUSEL은 이런 발견을 주목적으로 하는 연구 프로그램에서 백그라운드 측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할 것이다. 또한 현존하는 그리고 계획 중인 핵물리학 시설에서 새로운 기능을 개발하게 할 것이다. 새로운 표준모형의 개발은 새로운 실험 결과와 함께 더욱 발전된 이론을 필요로 한다.

 <DUSEL의 조감도, 출처: www.lbl.gov>

 상대론적 중이온 충돌기 (RHIC, Relativistic Heavy Ion Collider) 에서 RHIC II 업그레이드를 지원해야한다.

 

RHIC에서의 실험은 극고온과 밀도에서 새로운 물질의 상태를 발견하였다. 즉, 예상치 못했던 거의 완전 액체 (perfect liquid)의 성질을 보이는 쿼크-글루온 플라즈마를 발견하였다. 이 물질을 더욱 자세히 연구하기 위해 RHIC II 의 업그레이드 (luminosity upgrade)와 검출기의 성능향상이 필요하다. RHIC의 첫 5년간의 실험에서 개가를 올린 중요한 발견들을 위해 쿼크-글루온 플라즈마의 성질에 대한 광범위하고 정량적인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 충돌율을 10배 정도로 늘리고 검출기를 업그레이드하고 이론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RHIC II 업그레이드로 큰 에너지를 동반하는 제트, 무거운 쿼크의 희귀한 결합 상태등과 같은 플라즈마를 연구하는 독특한 측정이 가능해 진다. 검출기 업그레이드로 실험으로 커버하는 영역을 크게 늘리고 새로운 형태의 중요한 측정이 가능케 된다. 쿼크-글루온 플라즈마의 정량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중이온 충돌의 모형, 분석적인 방법, 대용량의 컴퓨터 계산 등에 대한 새로운 투자가 필요하다.


 

<RHIC 실험에서 찍은 금 이온 충돌 사진, 출처: www.wikipedia.org>




2009년 6월 16일 화요일

핵물리학의 연구방향 (서론)

 

앞의 포스트 (1, 2, 3) 에서 미국 NSAC의 핵과학 장기연구 계획을 소개했습니다. 다른 분야를 전공하시는 과학 기술자 뿐 아니라 과학에 관심을 갖고 계시는 분들께 현대 핵물리의 주 연구 분야와 과제를 맛보실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다음은 NSAC 보고서의 서문입니다. 미국 핵과학 사회의 관점을 나타내는 것 같아 여기 실어봅니다.

 

<서문>

 

2006 년 7월 17일 에너지성의 Office of Science for Nuclear Physics와 국립과학재단(NSF)의 수학 및 물리 과학 감독관은 핵과학 자문위원회(NSAC)에 미국 핵물리 연구의 동향과 우선분야를 검토하고 차후 10년간 미국 핵과학 연구 프로그램의 원활한 진보를 위한 구조를 제공할 장기 계획을 요청했다. 이 요청으로 핵과학 사회는 상향식의 리뷰와 전망에 대한 작업에 착수했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학자들의 광범위한 제안에 귀를 기울이며 NSAC 멤버를 포함한 59명은 2007년 5월초 미래 연구 방향을 제시할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새 장기 계획 - 핵물리학의 첨단 - 은 이 모임의 결과다.

 

지난 10년간 핵과학의 최우선 과제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국가에 의해 세워진 장치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 장치들을 이용한 연구로 인하여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하고 또 새로운 발견을 많이 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도 새로운 발견을 위해서는 새로운 장치가 필요하고 새로운 투자 없이는 결코 성공이 계속될 수 없다.

 

지난 10년간의 연구와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핵과학에서 지속적인 진보를 유지하고 미래의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도록 이끄는 길은 명백하다. 미국 핵과학 사회는 확신하건대 이를 위해서는 이 장기 계획에서 제시하는 새롭고 업그레이드된 장치가 필요하다.  새로운 투자 없이 이 분야에서 미래의 연구는 유럽과 아시아의 과학자들에 의해 주도될 것이다. 일본은 지난 10년간 이미 15억 달러를 새로운 가속기를 건설하고 기존 가속기를 업그레이드 하는 데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유럽은 새로운 프로젝트에 20억 달러 가까운 자금을 투자 했거나 약속했다. 중국은 새 핵과학 연구 가속기를 지금 건설 중에 있고 인도는 곧 새로운 건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약속했다. 핵과학 연구 장치 (가속기)를 새로 만들거나 업그레이드 하기위해 세계적으로 투자되는 금액은 40억 달러에 달한다. 같은 기간 동안 미국에서는 이 분야에서 중요하다고 할 새로운 건설 계획이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 (주: 5.5억 달러의 미국 FRIB 건설계획이 이 보고서가 나온 후인 2008년 12월에 확정 발표되었습니다. 여기참조)


향 후 10년간 물리 과학 연구의 지원이 두 배가 된다는 약속이 지켜지면 미국은 핵과학에 있어서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할 자원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연구비는 가장 필요한 가속기와 검출기 제작에 우선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현존하는 장치의 가동은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계속 유지 돼야 한다. 정규 연구 인력의 수는 거의 비슷하게 유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미래의 일자리를 위해 대학원 학생 수의 증가가 필요하다. 대학과 국립 연구소의 은퇴 연구원을 대신하고 산업, 의학, 국립 연구소의 새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박사학위 생산이 20% 정도 더 늘어나야 된다고 전망된다. 더구나 업그레이되거나 새로 만들어질 가속기와 검출기에 대한 투자는 에너지, 의학, 방위 산업, 재료 공학 연구를 포함하는 많은 분야에 응용될 것이 확실하다.

여기 제출하는 새로운 계획. 핵과학의 첨단 (The Frontiers of Nuclear Science)은 미국이 장래에도 핵과학 연구의 선도자가 되는 길을 보증할 방도를 제시한다.

 

 

 <Long Range Plan의 커버>

 

 

 

 


2009년 6월 15일 월요일

핵물리학의 연구 방향 3

 

 

앞에서 포스트했던 2008년 NSAC의 핵과학 장기 연구 계획서의 다음 부분인 최근 6년간 이루어진 연구 중 NSAC가 중요한 연구라고 평가한 8개의 연구 요약에서 나머지 4개를 소개합니다. (다른 4개는 여기)

 

안정성의 한계연구 (Probing the Limits of Stability)

 

안정되있는 핵에, 그것이 감당하지 못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중성자를 더 더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실험이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이론적 예측에 결정적인 정보를 가져다준다. 또한 미래 에너지 기술에 관계되는 핵분열의 이론이 반드시 만족시켜야하는 강제조건을 제공한다. 현재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가벼운 원소의 경우에 대해서만 알려져 있다. 이 질문을 거꾸로 할 수도 있다. 즉, "얼마나 적은 수의 중성자가 원자핵을 비활성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로 질문을 바꿀 수 있다. 중성자가 더 많이 포함된 동위 원소를 측정하면 강한 상호작용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가능해진다. 궁극적으로 중성자 드립 라인 (neutron drip line)으로 불리는 이 극한이 어디에 위치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강한 상호작용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NSCL (National Superconducting Cyclotron Laboratory)에서 최근 수행된 알루미늄과 마그네슘의 동위원소 중 중성자를 많이 포함하는 동위원소에 대한 측정은 이 원소들의 드립라인이 기존의 예측보다 훨씬 더 안정성 라인 (line of stability)으로 부터 많이 떨어져 있음을 나타낸다. 드립라인에 대한 연구는 강한 상호작용이 어떻게 포화되는지를 아는 데 중요하다. 이는 또 원소의 생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아주 무거운 원소들은 별의 폭발과정에서 만들어 진다고 생각되는데 이때는 빠른 중성자 포획 (rapid neutron capture)이  일어나고 이 반응은 생성된 원소가 중성자 드립라인에 이르기까지 계속 일어나게 된다. 연속된 중성자 포획과 핵의 베타 붕괴를 통해 자연 상태에서 가장 무거운 우라늄같은 원소가 만들어진다. 이 R-반응 핵합성 (r-process nucleosynthesis) 은 천체물리에서 가장 중요한 반응중 하나로 아직 충분한 데이터가 수집되어있지 않은 상태다.


<nuclear landscape, 이미지 출처: http://www.pas.rochester.edu>

 

별에서의 반응률 (Stellar Reaction Rates)

 

{}^{14}N(p,\gamma){}^{15}O 반응의 산란 단면적은 탄소-질소-산소 (CNO) 사이클을 통해 별에서 불타는 수소를 제어한다. 최근 측정된 이 반응의 산란 단면적은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약 12배 더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주의 나이와 연관되는 천체의 나이를 약 10억년 더 연장시켜준다. 한편, 현존하는 안정된 빔과 희귀 동위원소 빔을 이용한 반응률 측정은 신성(nova) 폭발에서 중요한 반응을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이는 뜨거운 CNO 사이클과 네온-소디움 사이클을 모델링하는데 있어서 불확실성을 감소시켜  {}^{18}F{}^{22}{\rm Na} 같이 우주에 설치된 감마선 망원경이 신성 폭발의 잔해에서 찾고있는 오랫동안 존재하는 방서성 동위원소의 생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핵이론의 발전으로 핵 반응률과 들뜬 상태의 반감기를 아주 정밀하게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http://www.supersci.org>

 

뉴트리노 진동과 질량 (Neutrino Oscillations and Neutrino Mass)


2002년 장기 연구 계획이 빛을 보기 바로전에 SNO 그룹은 태양의 뉴트리노에 대한 전하가 변하는 그리고 전하가 유지되는 두 가지의 뉴트리노 산란에 관한 첫번째 측정을 완성했다. 이 결과로 태양에서 만들어진 전자-뉴트리노가 다른 종류의 뉴트리노로 바뀐다는 것이 확실해졌고 이는 기존의 불충분한 실험 결과를 설명하고 또 태양 에너지 발생에 대한 모델을 확인하였다. 비슷한 진동이 대기중의 뮤온-뉴트리노에서도 발견되었다. 최근의 KamLAND 실험은 핵 반응로에서 생기는 반뉴트리노도 진동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뉴트리노가 진동을 한다는 사실은 뉴트리노가 질량을 갖고있다는 말이고 이는 핵물리와 입자물리에 큰 영향을 준다. 이는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의 분포구조와 함께 현 표준모형을 넘어서는 물리학의 첫 직접 증거가 된다. 지금은 뉴트리노 질량 행렬이 확립되었고 mixing angle은 어느정도 알려졌다. 핵물리학자들은 지금 뉴트리노 질량의 절대적인 값과 뉴트리노가 자기 자신의 반입자인지를 확인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는 우주에 반물질보다 물질이 더 많은 이유를 설명할 열쇠를 쥐고있다고 생각된다.

 

<뉴트리노 진동 실험, 이미지 출처: http://neutrino.kek.jp



전기약력에 대한 연구 (Precision Electroweak Studies)

 

렙톤과 원자핵의 전기약력을 정밀하게 측정하여 현 표준모형의 근본 대칭성의 자취를 밝힐 수 있다. E821 그룹은 최근 브뤀하븐에서 뮤온의 변칙자기모멘트 (anomalous magnetic moment)를 세계에서 가장 정밀하게 측정하였다. 결과는 현 표준모형이 제시하는 값과 차이를 보였다. SLAC의 E158 그룹은 전자-전자 충돌에서 패리티 비보존을 처음으로 측정하였다. 이는 표준모형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중 하나인 약력 mixing angle의 에너지 의존도에 대한 가장 엄격한 테스트를 제공한다. 중성자와 핵의 베타붕괴에 대한 더 세밀하고 정확한 측정과 함께 이 정밀한 실험들은 이론분야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핵이론물리학자들은 표준모형의 예측을 보다 더 자세히  할 수 있었고 초대칭이나 새로운 포준모형에대한 다른 후보 모형에 대해 광범위하고 새로운 계산을 완성중이다.

 

 

<Qweak 실험장치, 이미지 출처: http://jlab.org>


2009년 6월 12일 금요일

비정규직 30년의 노벨상 수상자, 괴퍼트-메이어


마리아 괴퍼트-메이어(Maria Goeppert-Mayer)는 1906년 독일의 카토비츠 (현재는 폴란드 영토)에서 태어난 여성 물리학자로 뀌리 부인에 이어 여자로서는 두 번째로 196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학자입니다. 당시 공동 수상자는 비그너(Eugine P. Wigner)와 엔센(J.H.D. Jensen)입니다. 그녀는 원자핵에 대한 nuclear shell model을 제안하여 원자핵의 구조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박사학위는 1931년 독일의 괴팅엔 대학교에서 받았지만 정규 교수직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약 30년 뒤인 1960년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주립대학 (UC San Diego)에서 입니다. 이 때 나이는 53세 이었습니다. 정규 교수직을 받은 3년 후 노벨상을 받았고 1972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리아의 (우연히도 뀌리부인의 이름과 같습니다) 집안은 대대로 학자인 집안으로 아버지 프리드리히 괴퍼트는 소아과의사였습니다. 나중에 마리아가 교수가 됨으로써 아버지 혈족을 따지면 마리아는 7대째 교수가 됩니다. 1910년 아버지가 괴팅겐 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가족이 모두 괴팅엔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괴팅겐은 그 당시 가장 뛰어난 과학자들이 많이 있었던 곳입니다. 엔리코 페르미, 볼프강 파울리, 폴 디락, 베르너 하이젠베르그등이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대학에 가는 것은 독일에서도 아주 드물었다고 합니다. 그 동네에서 여학생에게 아비투어를 준비시키는 사립학교가 딱 하나 있었는데 당시의 경제난으로 인해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그 학교의 교사들은 학교가 문을 닫았음에도 계속 학생들을 지도했고 1924년 하노버에서 아비투어를 치룰 수 있었습니다. 1924년 마리아는 드디어 괴팅겐 대학교에 등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수학자가 되길 원했지만 당시 등장한 양자역학에 빠져 물리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그녀를 가르쳤던 교수 중에는 막스 보른, 아돌프 빈다우스, 제임스 프랑크 등  세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있었습니다. 영국의 케임브리지에서 보낸 한 학기를 제외하고 마리아는 괴팅엔에서 공부를 계속하여 1930년 막스 보른을 주 지도교수로 하여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24살 때의 일입니다.

졸업하기 전 미국의 록펠러 재단의 후원으로 제임스 프랑크와 일하던 미국인 조세프 에드워드 메이어를 만나고 1930년 결혼합니다. 그리고 곧 남편이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 홉킨스 대학의 교수가 되면서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이때부터 기나긴 비정규직의 길을 걷습니다. 마리아의 남편은 1931년부터 1939년까지 존스홉킨스 대학교, 1940년부터 1946년까지는 콜롬비아 대학교, 그리고 그 이후에는 시카고 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였습니다. 그동안 마리아는 남편을 따라 다녔지만 정식 교수로는 채용이 되지 못했습니다. 사라 로렌스 대학, 콜롬비아 대학, 로스 알라모스 국립 연구소에서 연구원을 했고 시카고 대학에서는 계약교수, 그 후 아르곤 국립연구소에서는 파트타임 시니어 연구원으로 근무했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연구를 한 곳은 시카고와 아르곤에서였습니다. 1960년 마리아는 드디어 캘리포니아 라 졸라 주립대학 (현 샌디에고 주립대학)에 남편과 함께 정식 교수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녀가 오랫동안 정식 교수가 되지 못한 이유로 두 가지를 이야기 하는데 하나는 성차별이고 다른 하나는 부부가 같은 과에서 근무하는 것을 꺼리는 연고자 임용에 반대하는 분위기였다고 하는데 두 번째 이유는 핑계에 불과하고 솔직히는 성차별 때문이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예로 수학에서는 힐버트(Hilbert)의 강력한 추천에도 불구하고 정식 교수가 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그래서 4년간 힐버트의 이름으로 강의했던, 천재 여성 수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인 뇌더 (Noether) 가 있습니다.)

마리아는 1972년 세상을 떠났고 미국 물리학회는 매년 뛰어난 젊은 여성 물리학자에게 그녀의 이름을 딴 마리아 괴퍼트-메이어 상을 수여합니다. 또한 시카고 대학에서도 매년 뛰어난 여성 과학자나 공학자에게 상을 주고 있고 샌디에고 대학은 매년 여성과학자들을 초청해 과학에 대한 토의를 하는 마리아 괴퍼트-메이어 심포지엄을 개최합니다.

그녀에게 노벨상을 가져다준 원자핵 모형 외에 마리아는 많은 연구를 했는데 1931년 박사학위 논문은 2 개의 광자 (photon) 흡수 현상에 관한 것으로 이를 확인 하는 첫 실험이 1960년대에 가서야 가능했던 만큼 시대를 훨씬 앞선 연구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2 개의 광자 산란 단면적의 단위는 GM (Goeppert-Mayer) 단위로 부릅니다.




 <비정규직일 때와 정규직일 때의 마리아 괴퍼트-메이어. 출처: http://www.uni-goettingen.de, http://www.dw-world.de>

 


2009년 6월 11일 목요일

왜 운동량은 p 로 쓸까?

 

아메리컨 저널 오브 피직스 (American Journal of Physics)는 미국의 물리 교육에 관한 저널입니다. 교육방법이외에도 물리학에 등장하는 사건, 개념, 주요 연구 분야등에 대해 알기 쉽게 쓴 논문들도 출판합니다. 그 중에는 평소에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친 문제나 토픽도 있습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일반 물리학이나 교양 물리 서적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접하는 물리령중의 하나가 운동량입니다. 운동량은 질량과 속도의 곱이며 p로 표시합니다. 따라서 p=mv 라고 씁니다. 여기서 m은 질량, 영어로는 mass이고 v 는 속도, 즉 velocity입니다. 많은경우 물리량을 표시할 때는 영어 단어의 첫 알파벳을 따서 씁니다. 위의 m과 v의 경우처럼. 물론 표시하고자 하는 물리량들의 첫번째 알파벳이 겹치는 경우에는 다른 알파벳을 씁니다. 그러면 운동량은 왜 p 로 나타낼까요? 운동량은 영어로 모멘텀, momentum 이고 첫번째 알파벳이 질량과 같은 m 입니다. 질량이 더 중요한 양이기 때문에 먼저 m을 질량에게 주고 운동량에게는 다른 문자를 주었을까요? 재미있는 것은 위 식 p=mv 가 처음 등장한 곳은 뉴턴이 쓴 프링키피아에서라고 합니다. 그러면 뉴턴은 왜 운동량을 p로 썼을까요. o 나 n, t 도 있는데. 혹시 운동량의 p 는 puissance 라는 단어에서 왔을까요? 하지만 puissance 는 '힘'에 가까운 단어인데, 운동량과는 다르죠. 그러면 imPulse의 p에서 왔을까요? 이 질문은 아메리컨 저널 오브 피직스, vol 62 (1994년) 871 페이지의 '질문과 대답'란에 실린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미 해군 항공 전쟁 센터의 Gillespie 라는 연구원에 의해 같은 저널의 vol 63 (1995년) 의 297 페이지에 실렸습니다. 이 설명이 정말로 맞는 설명인지는 뉴턴이 밝히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추측만 할 뿐이죠. 어쨌든 설명은 이렇습니다.


이것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momentum이라는 말이 뉴턴 시대에도 쓰였는지 알아야 합니다. 오래된 과학책에서는 mimentum 이라는 말이 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단어의 뉴턴 시대의 형태는 pimentum 이었다고 합니다. 즉, momentum의 고어는 pimentum 으로


\mbox{pimentum} \to \mbox{mimentum} \to \mbox{momentum}


이 되었고 만약 이게 맞다면 운동량이 p가 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 됩니다. 그 당시 운동량은 pimentum 이었으니까요.

당시에는 물론 운동량의 개념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운동량이라는 단어도 없었습니다. 그 개념을 처음 생각한 사람이 뉴턴이었으니까요. 그러면 뉴턴은 왜 운동량을 pimentum 이라 불렀을까요?

pimentum 이라는 말은 pimento 라는 단어를 연상 시킵니다. pimento는 포르투칼어로 체리페퍼라고도 합니다. 또는 우리가 잘 아는 피망을 가르키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 pimento는 올리브 열매로 피클을 만들 때 올리브 열매 내부를 채우는 데 쓰입니다. 물론 뉴턴 시대에도 그랬다고 합니다. 한편 뉴턴은 일반적으로 조용하고 다른 사람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군요. 한창 때의 뉴턴은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로 여러 모임에도 참가하고 밤 늦도록 파티에서 와인을 마시며 물리학의 많은 아이디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면은 볼프강 파울리와 비슷하네요.)  pimentum의 탄생은 어느 날 파티에서 칵테일을 마실 때랍니다. 그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칵테일 잔에 녹색 올리브를 꽂아 두었는데 뉴턴과 친구들은 그 걸 가지고 놀다 올리브 속의 pimento가 올리브 구멍으로 부터 잘 빠져나오지 않는다는 걸 보았습니다. pimento는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올리브 속에 그대로 머무르려 한다 는 것을 본 것이죠. 물론 이 성질을 질량과 속도의 곱에 연관 시킬 수 있는 사람은 뉴턴 뿐이었고 그는 이 물리량을 pimento에서 이름을 따 pimentum 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왼쪽의 그림처럼 올리브속을 채우고 있는 빨간 체리페퍼는 잘 빠져 나오지 않습니다.>

 

조금은 허탈한 대답인데 비슷한 이야기가 팽귄 다이아그램의 유래에도 있습니다. 펭귄 다이아그램은 파인만 다이아그램의 하나로 현 표준모형의 CP 깨짐에 중요합니다. 이를 제안한 사람은 CERN의 존 엘리스 (John Ellis) 입니다. 사실 다이아그램이 펭귄을 그리 연상시키지는 않는데 펭귄 다이아그램이라 부르는 이유는 엘리스가 다트게임에서 졌기 때문입니다. 다트게임을 하다 졌는데 그 벌칙이 엘리스의 다음 논문에 팽귄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스는 그 후 자신이 공부하고 있던 파인만 다이아그램을 찌그려뜨려 새 모양(?)을 만들고 이를 펭귄 다이아그램이라고 불렀습니다.

<펭귄 다이아그램>




2009년 5월 30일 토요일

미국 최초의 흑인 물리학박사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 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등번호 42번은 모든 팀에서 영구결번이라고 하죠. 미국 프로 농구 NBA의 첫 흑인 선수는 척 쿠퍼, 냇 클리프턴, 얼 로이드라는 세 선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각 분야에서 인종 차별을 깨뜨린 선구자들 입니다. 그러면 물리학에서는 어떨까요? 아쉽게도 지금 현재에도 흑인 물리학자들을 많이 볼 수는 없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물리학이 스포츠처럼 매력있지도 않고 그리고 부를 안겨주지 못하니까 관심도 덜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학문의 세계에서도 남녀 차별과 인종 차별은 존재해 왔습니다. 다만 재키 로빈슨이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때가 1947년 4월,  미국 프로 농구의 인종 장벽이 깨진 것은 1950-1951 시즌이라고 하는데 물리학에서 최초의 흑인 박사가 탄생한 것은 그보다 70여년 빠른 1876년 6월이라고 하니 조금은 체면이 설 지 모르겠습니다만. 미국 물리학회의 기록으로는 미국 최초의 흑인 물리학 박사는 1852년 코네티컷의 뉴 하븐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알렉산더 부쉐 (Edward Alexander Bouchet; 1952-1918)입니다. 24살에 학위를 받았습니다. 사진 속의 인물이 젋은 시절의 부쉐입니다.

 

 

그는 미국 대학교에서 배출된 첫번째 흑인 물리학 박사이면서 미국 대학교가 배출한 6번째 물리학 박사입니다. 그는 또 예일 대학교 최초의 흑인 졸업생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우스 케롤라이나에서 주인을 따라 코네티컷으로 이주한 노예였습니다. 나중에 주인은 그를 사업자금을 주면서 노예에서 해방합니다. 그 후 그는 흑인 교회의 집사로 뉴 하븐의 흑인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 됩니다. (그 교회는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로 탈출한 노예들이 중간에 들르는 곳이었습니다.) 에드워드에게는 세 누나가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에 적극적이었고 에드워드는 당시 관습에 따라 지역 흑인 공립학교인 Artisan Street Colored School에서 공부를 합니다. 총 학생수는 30명 이었고 교사는 한 명 뿐인 유색인종만 다니는 학교입니다. 1866년부터 1868년까지 뉴 하븐 고등학교를 다니고 1868년 (16세) 그는 놀랍게도 졸업생을 예일 대학교로 많이 보내기로 유명한 사립 대학예비학교인 Hopkins Grammar School에 입학합니다. 그곳에서 라틴어, 그리스어, 기하학, 대수학, 역사와 같은 전통적인 교육을 받고 1870년 (18세)에 반에서 1등으로 그 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당당히 예일 대학교에 입학합니다. 아버지의 주인이었던 로빈슨의 아들과 함께 말입니다. 1874년 (22세)에 반에서 124명중 6등의 성적으로 흑인으로서는 예일 대학교 (최초의 입학생은 아니지만) 최초의 졸업생이 됩니다. 그는 또 아주 우수한 학생만 가입할 수 있는 Phi Beta Kappa에 처음으로 추천된 흑인입니다. (이 때 가입은 하지 못했고 최초의 Phi Beta Kappa의 흑인 멤버는 1877년 버몬트 대학의 헨더슨입니다.) 그의 이력은 필라델피아의 자선 사업가이며 Institute for Colored Youth의 운영위원인 알프레드 코우프(Alfred Cope)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그의 후원으로 에드워드는 학업을 계속해서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그 의 주 지도 교수는 아더 라이트로 그는 1861년 미국 대학교에서 최초로 물리학 박사를 받은 사람이었고 에드워드의 주 연구과제는 기하 광학으로 그의 학위 논문 제목은 “On Measuring Refractive Indices” (굴절률 측정에 대해) 이었습니다. 학부를 마친 후 불과 2년 만에 이룬 업적입니다.당시 이 정도의 학력과 업적이라면 누구든 쉽게 대학교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흑인이 아니었다면. 결국 인종 차별의 장벽에 막혀 그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전혀 얻지 못합니다. 1876년 그는 후원자인 코우프의 제의를 따라 필라델피아에 있는 Institute for Colored Youth에서 교편을 잡습니다. ICY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흑인을 위한 고등학교로 퀘이커 교도가 세웠으며 미국에서 흑인으로는 최초로 유명 대학교의 교수가 된 리즌 (Charles L. Reason)이 교장(1852-1856)이었던 곳입니다.

 

에드워드는 ICY에서 26년간 물리와 화학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과 지원 부족으로 스스로의 연구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1900년 경 흑인 교육에 대한 논쟁이 치열해 집니다. 즉 흑인에게 학문적인 교육대신 직업 교육을 시켜야하는지에 관한 논쟁입니다. 결국 ICY는 직업교육을 택하고 펜실베니아의 체니로 옮겨가 체니 대학교 (Cheyney University)가 됩니다. (지금은 학사와 석사학위를 제공하는 학부 중심 대학입니다.) 학문적 교육을 주장한 에드워드는 1902년 학교를 떠나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교육을 계속합니다. 1916년 동맥경화로 완전히 은퇴한 그는 뉴 하븐의 어린시절 자랐던 집으로 어머니에게 돌아옵니다. 그곳에서 그는 1918년 66세를 일기로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세상을 떠납니다. 2 년 후 그의 어머니 또한 102세를 일기로 운명합니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없었습니다. 편지나 노트도 전해지지 않아 그에 관해 알려진 게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흑인도 고등 교육을 받고 학문을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첫번째 인물입니다. 두번째로 흑인 물리학 박사가 탄생한것은 그가 사망한 해인 1918년 엘머 이메스에 의해서 입니다. 최초의 흑인 물리학 박사가 탄생한지 42년 후 의 일입니다.

 

<예일 대학교에 있는 그의 초상화>


2009년 5월 21일 목요일

네팔 (We want to study physics)


2006년 12월 네팔에서 벌어졌던 데모입니다. 데모가 벌어진 장소는 네팔 교육체육부 앞 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은 물리공부를 더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고국을 떠나기 위해서는 학위를 받아 유학가는게 일반적인데 그중에서도 외국에서 전공을 (돈을 벌 수 있는) 공학으로 바꾸기 쉬운 물리학 학위를 갖는 게 유리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강좌 수가 제한되어 있어 대학에서 물리를 수강하는게 힘들고 그래서 물리 강좌 수를 늘려 달라는 데모를 한 것 이라고 합니다.




2009년 5월 19일 화요일

오스트리아, CERN 탈퇴를 철회하다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경제 위기의 영향이 드디어 유럽 과학계까지 뒤흔들었다. 이번 달 초 (2009년 5월), 오스트리아의 과학부 장관은 오스트리아가 2011년 이전까지 CERN에서 탈퇴한다고 발표해서 많은이들을 놀람과 충격에 빠뜨렸다. 이는 현재 거대 강입자 가속기 (LHC)의 가동으로 들떠있던 CERN의 과학자들을 낙담케 했는데 그 이유는 비록 오스트리아가 CERN에 투자하는 금액이 약 2000만 유로로 CERN 전체 예산의 2.2% 정도이기 때문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다른 참여국들을 자극 해 탈퇴선언이 잇따르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는 1959년부터 CERN의 창립과 운영을 지원해왔는데 최근의 경제난으로 더 이상 CERN의 회원국이 될 수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많은 과학자들의 탄원을 불러 왔고 특히 오스트리아 학자들은 이 사건이 국제 사회와 과학계에서 오스트리아의 신뢰를 추락시키고 결국은 오스트리아의 과학을 후퇴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CERN을 탈퇴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의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다행히 오스트리아 수상은 오늘 오스트리아가 CERN의 회원국 자격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발표해 이번 사건은 수습과정으로 들어 갔다.



2009년 5월 13일 수요일

핵융합: 고온 혹은 상온


근래 핵융합에 관한 두가지 사건이 보도된 바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핵융합 실험장치인 KSTAR의 준공이고 다른 하나는 상온핵융합의 가능성에 대한 기사로 재미 한국계 기업인이 원천기술(?)을 확보 했다는 기사다. 핵융합의 평화적 이용은 지난 반세기동안 많은 과학 기술자의 꿈이었다. 우리는 현재 얼마나 이 꿈에 가까이 와 있을까?


고온 핵융합

핵융합의 대표가 고온 핵융합이다. 두 가지의 핵이 융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온이 필요하다. 핵융합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고온을 다스려야 하고 이는 고온 핵융합의 아용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이다. 최근 KSTAR와 ITER가 고온 핵융합의 새로운 장래를 개척하는 첫걸음을 시작했고 많은 이들이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는듯 하다. (핵융합에 대한 국내의 연구는 http://www.kps.or.kr/~pht/7-6/02.html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핵 융합을 통해 과학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나마 높아지는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며 KSTAR의 설계에서 완공까지 묵묵히 연구를 수행한 연구진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렇지만 여기서 한 가지 우려가 되는 점이 있다. 많은 언론매체들은 마치 핵융합을 이용한 인공태양이 10-15년후면 가능하다는 장밋빛 미래를 보도하고 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듯하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기억해야할 점은 거의 모든 학술 프로젝트가 그렇듯이 ITER 또한 시간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몇 달 전  미국 의회와 정부가 ITER에 관련된 프로젝트를 2009년에 "다시"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ITER의 회원국중 많은 지분을 갖고 또 많은 연구비를 지원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다시" 지원을 하기로 했다면 그 동안에는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국은 작년인 2008년 ITER에 관계되어 신청된 연구비 1억6천만 달러를 거의 완전 삭감하여 약 1천만 달러만 지원했다. 즉 거의 0이 된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학회에서 과학자들에게 자기 지역구의 연방의원에게 편지를 쓰도록 권하기도 했지만 결국 결론을 바꾸지 못했다. 더구나 미국이 ITER 연구비를 삭감한 게 작년이 처음은 아니다. 다행히 올해에는 ITER에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면 미국은 왜 ITER 연구비를 삭감했을까? 인공태양의 기술을 자국이 독점하기위해 국제 공동 연구를 원하지 않아서일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그게 목적이라면 ITER에 지원하기로 한 연구비 정도가 미국내의 다른 핵융합 프로젝트로 들어가야 하지만 미국내에 그렇게 큰 프로젝트는 없다. 핵융합은 성공하기만 하면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몇 억, 몇 십억달러의 투자비는 성공시의 보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미국 정부가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성공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핵 융합은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험적으로 증명된 아주 잘 확립된 연구 분야다. 핵융합을 이용한 수소폭탄의 성공이후 핵융합 학계는 핵융합의 평화적 이용이 20-30년내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30년 이상이 지난 지금 ITER의 목표는 상용화된 핵융합 발전소를 20-30년내에 완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항상 30년'이 미국정부를 비롯한 회의론자들을 만들어 내는데 일정 역할을 해온 셈이다. 사람들의 기대를 부추기는 현재의 언론 보도로 보건대 보면 만일 ITER와 KSTAR가 공언한 시간표대로 핵융합발전을 진행시키지 못할 경우 그 후폭풍이 심히 우려된다. 핵융합에 대한 연구와 지원은 꾸준히 계속 되는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장미빛 전망만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이 프로젝트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같이 알려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상온 핵융합을 연구하는 학자들. 왼쪽부터 Randall J. Hekman (Hekman Industries, LLC, Grand Rapids, MI), Michael C. H. McKubre (SRI International, Menlo Park, CA), Peter L. Hagelstein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Cambridge, MA), David J. Nagel (The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Washington DC) and Graham Hubler, (Naval Research Laboratory, Washington, DC) 출처: http://newenergytimes.com/v2/government/DOE/DOE.shtml]




상온 핵융합

1989 년 폰스와 플라이쉬만의 상온 핵융합에 대한 발표는 전세계를 뒤흔들었고 수 많은 학자들이 곧장 연구에 착수했다. 한때는 그들이 사용한 팔라듐을 생산하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회사를 MIT에서 싹쓸이 하여 향후 2-3년간의 생산량을 모두 입도선매했다는 루머(혹은 사실?)도 떠 돌았을 정도로 그 파급 효과는 엄청났다. 하지만 그 실험을 재현하려는 시도는 실패했고 미국물리학회는 상온 핵융합을 실패로 규정했다. 그 후 상온 핵융합은 그동안 사이비 과학의 대명사로 오명을 떨쳐왔고 주류 물리학계는 이 연구에서 손을 뗀다. (노벨상 수상자인 쉬빙거는 상온핵융합을 지지했으나 그의 논문도 주류 저널에서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물론 상온 핵융합을 그후에도 계속 연구하는 이들이 있었고 오명을 떨치기위해 상온핵융합(cold fusion)이라는 말대신 저에너지 핵반응 (Low Energy Nuclear Reaction, LENR)이나 응집물질 핵과학 (Condensed Matter Nuclear Science)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주류에서 소외되었음에도, 성공시의 커다란 대가 때문에, 이 연구를 지원한 곳은 많았다.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는 폰스와 플라이쉬만에게 1천2백만 파운드를 투자했고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일본의 경제산업성은 2천만 달러를 그리고 인도 정부도 상당액을 투자했으나 결국은 모두 손을 털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새로운 후원자가 나타나 최근의 실험 결과 발표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도 그 진위는 확실히 모른다. 상온 핵융합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폰스와 플라이쉬만의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1989년 폰스와 플라이쉬만 그룹과 동시에 발표하기로 해놓고 뒤통수를 맞은 브리검 영 대학교의 존스(Jones)의 뮤온을 이용한 방법이다. (존스는 후에 911 음모론을 주장한 사람으로 유투브의 동영상에 자주 나온 사람이다.)  뮤온을 이용한 방법은 팔라듐을 이용한 것과 달리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험적으로 설명이 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연구한 사람으로는 구소련의 유명한 물리학자 사하로프부터 잴도비치, 알바레즈 등의 유명한 학자들이 있으며 전자기학 교과서로 유명한 잭슨 (J.D. Jackson)이 이 분야의 중요한 논문을 썼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잭슨의 논문은 이 방법은 연쇄반응이 되지않아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내린다. 어쨌든 상온핵융합은 고온핵융합보다 갈길이 더 멀다. 상온 핵융합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모토는 "차 한잔 끓여줘."이다. 차 한잔 끓일 정도의 열이나 만들수 있느냐는 비아냥이다.  (그림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