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5일 월요일

핵물리학의 연구 방향 3

 

 

앞에서 포스트했던 2008년 NSAC의 핵과학 장기 연구 계획서의 다음 부분인 최근 6년간 이루어진 연구 중 NSAC가 중요한 연구라고 평가한 8개의 연구 요약에서 나머지 4개를 소개합니다. (다른 4개는 여기)

 

안정성의 한계연구 (Probing the Limits of Stability)

 

안정되있는 핵에, 그것이 감당하지 못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중성자를 더 더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실험이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이론적 예측에 결정적인 정보를 가져다준다. 또한 미래 에너지 기술에 관계되는 핵분열의 이론이 반드시 만족시켜야하는 강제조건을 제공한다. 현재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가벼운 원소의 경우에 대해서만 알려져 있다. 이 질문을 거꾸로 할 수도 있다. 즉, "얼마나 적은 수의 중성자가 원자핵을 비활성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로 질문을 바꿀 수 있다. 중성자가 더 많이 포함된 동위 원소를 측정하면 강한 상호작용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가능해진다. 궁극적으로 중성자 드립 라인 (neutron drip line)으로 불리는 이 극한이 어디에 위치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강한 상호작용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NSCL (National Superconducting Cyclotron Laboratory)에서 최근 수행된 알루미늄과 마그네슘의 동위원소 중 중성자를 많이 포함하는 동위원소에 대한 측정은 이 원소들의 드립라인이 기존의 예측보다 훨씬 더 안정성 라인 (line of stability)으로 부터 많이 떨어져 있음을 나타낸다. 드립라인에 대한 연구는 강한 상호작용이 어떻게 포화되는지를 아는 데 중요하다. 이는 또 원소의 생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아주 무거운 원소들은 별의 폭발과정에서 만들어 진다고 생각되는데 이때는 빠른 중성자 포획 (rapid neutron capture)이  일어나고 이 반응은 생성된 원소가 중성자 드립라인에 이르기까지 계속 일어나게 된다. 연속된 중성자 포획과 핵의 베타 붕괴를 통해 자연 상태에서 가장 무거운 우라늄같은 원소가 만들어진다. 이 R-반응 핵합성 (r-process nucleosynthesis) 은 천체물리에서 가장 중요한 반응중 하나로 아직 충분한 데이터가 수집되어있지 않은 상태다.


<nuclear landscape, 이미지 출처: http://www.pas.rochester.edu>

 

별에서의 반응률 (Stellar Reaction Rates)

 

{}^{14}N(p,\gamma){}^{15}O 반응의 산란 단면적은 탄소-질소-산소 (CNO) 사이클을 통해 별에서 불타는 수소를 제어한다. 최근 측정된 이 반응의 산란 단면적은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약 12배 더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주의 나이와 연관되는 천체의 나이를 약 10억년 더 연장시켜준다. 한편, 현존하는 안정된 빔과 희귀 동위원소 빔을 이용한 반응률 측정은 신성(nova) 폭발에서 중요한 반응을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이는 뜨거운 CNO 사이클과 네온-소디움 사이클을 모델링하는데 있어서 불확실성을 감소시켜  {}^{18}F 와 {}^{22}{\rm Na} 같이 우주에 설치된 감마선 망원경이 신성 폭발의 잔해에서 찾고있는 오랫동안 존재하는 방서성 동위원소의 생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핵이론의 발전으로 핵 반응률과 들뜬 상태의 반감기를 아주 정밀하게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http://www.supersci.org>

 

뉴트리노 진동과 질량 (Neutrino Oscillations and Neutrino Mass)


2002년 장기 연구 계획이 빛을 보기 바로전에 SNO 그룹은 태양의 뉴트리노에 대한 전하가 변하는 그리고 전하가 유지되는 두 가지의 뉴트리노 산란에 관한 첫번째 측정을 완성했다. 이 결과로 태양에서 만들어진 전자-뉴트리노가 다른 종류의 뉴트리노로 바뀐다는 것이 확실해졌고 이는 기존의 불충분한 실험 결과를 설명하고 또 태양 에너지 발생에 대한 모델을 확인하였다. 비슷한 진동이 대기중의 뮤온-뉴트리노에서도 발견되었다. 최근의 KamLAND 실험은 핵 반응로에서 생기는 반뉴트리노도 진동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뉴트리노가 진동을 한다는 사실은 뉴트리노가 질량을 갖고있다는 말이고 이는 핵물리와 입자물리에 큰 영향을 준다. 이는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의 분포구조와 함께 현 표준모형을 넘어서는 물리학의 첫 직접 증거가 된다. 지금은 뉴트리노 질량 행렬이 확립되었고 mixing angle은 어느정도 알려졌다. 핵물리학자들은 지금 뉴트리노 질량의 절대적인 값과 뉴트리노가 자기 자신의 반입자인지를 확인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는 우주에 반물질보다 물질이 더 많은 이유를 설명할 열쇠를 쥐고있다고 생각된다.

 

<뉴트리노 진동 실험, 이미지 출처: http://neutrino.kek.jp



전기약력에 대한 연구 (Precision Electroweak Studies)

 

렙톤과 원자핵의 전기약력을 정밀하게 측정하여 현 표준모형의 근본 대칭성의 자취를 밝힐 수 있다. E821 그룹은 최근 브뤀하븐에서 뮤온의 변칙자기모멘트 (anomalous magnetic moment)를 세계에서 가장 정밀하게 측정하였다. 결과는 현 표준모형이 제시하는 값과 차이를 보였다. SLAC의 E158 그룹은 전자-전자 충돌에서 패리티 비보존을 처음으로 측정하였다. 이는 표준모형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중 하나인 약력 mixing angle의 에너지 의존도에 대한 가장 엄격한 테스트를 제공한다. 중성자와 핵의 베타붕괴에 대한 더 세밀하고 정확한 측정과 함께 이 정밀한 실험들은 이론분야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핵이론물리학자들은 표준모형의 예측을 보다 더 자세히  할 수 있었고 초대칭이나 새로운 포준모형에대한 다른 후보 모형에 대해 광범위하고 새로운 계산을 완성중이다.

 

 

<Qweak 실험장치, 이미지 출처: http://jlab.org>


2009년 6월 12일 금요일

비정규직 30년의 노벨상 수상자, 괴퍼트-메이어


마리아 괴퍼트-메이어(Maria Goeppert-Mayer)는 1906년 독일의 카토비츠 (현재는 폴란드 영토)에서 태어난 여성 물리학자로 뀌리 부인에 이어 여자로서는 두 번째로 196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학자입니다. 당시 공동 수상자는 비그너(Eugine P. Wigner)와 엔센(J.H.D. Jensen)입니다. 그녀는 원자핵에 대한 nuclear shell model을 제안하여 원자핵의 구조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박사학위는 1931년 독일의 괴팅엔 대학교에서 받았지만 정규 교수직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약 30년 뒤인 1960년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주립대학 (UC San Diego)에서 입니다. 이 때 나이는 53세 이었습니다. 정규 교수직을 받은 3년 후 노벨상을 받았고 1972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리아의 (우연히도 뀌리부인의 이름과 같습니다) 집안은 대대로 학자인 집안으로 아버지 프리드리히 괴퍼트는 소아과의사였습니다. 나중에 마리아가 교수가 됨으로써 아버지 혈족을 따지면 마리아는 7대째 교수가 됩니다. 1910년 아버지가 괴팅겐 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가족이 모두 괴팅엔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괴팅겐은 그 당시 가장 뛰어난 과학자들이 많이 있었던 곳입니다. 엔리코 페르미, 볼프강 파울리, 폴 디락, 베르너 하이젠베르그등이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대학에 가는 것은 독일에서도 아주 드물었다고 합니다. 그 동네에서 여학생에게 아비투어를 준비시키는 사립학교가 딱 하나 있었는데 당시의 경제난으로 인해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그 학교의 교사들은 학교가 문을 닫았음에도 계속 학생들을 지도했고 1924년 하노버에서 아비투어를 치룰 수 있었습니다. 1924년 마리아는 드디어 괴팅겐 대학교에 등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수학자가 되길 원했지만 당시 등장한 양자역학에 빠져 물리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그녀를 가르쳤던 교수 중에는 막스 보른, 아돌프 빈다우스, 제임스 프랑크 등  세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있었습니다. 영국의 케임브리지에서 보낸 한 학기를 제외하고 마리아는 괴팅엔에서 공부를 계속하여 1930년 막스 보른을 주 지도교수로 하여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24살 때의 일입니다.

졸업하기 전 미국의 록펠러 재단의 후원으로 제임스 프랑크와 일하던 미국인 조세프 에드워드 메이어를 만나고 1930년 결혼합니다. 그리고 곧 남편이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 홉킨스 대학의 교수가 되면서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이때부터 기나긴 비정규직의 길을 걷습니다. 마리아의 남편은 1931년부터 1939년까지 존스홉킨스 대학교, 1940년부터 1946년까지는 콜롬비아 대학교, 그리고 그 이후에는 시카고 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였습니다. 그동안 마리아는 남편을 따라 다녔지만 정식 교수로는 채용이 되지 못했습니다. 사라 로렌스 대학, 콜롬비아 대학, 로스 알라모스 국립 연구소에서 연구원을 했고 시카고 대학에서는 계약교수, 그 후 아르곤 국립연구소에서는 파트타임 시니어 연구원으로 근무했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연구를 한 곳은 시카고와 아르곤에서였습니다. 1960년 마리아는 드디어 캘리포니아 라 졸라 주립대학 (현 샌디에고 주립대학)에 남편과 함께 정식 교수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녀가 오랫동안 정식 교수가 되지 못한 이유로 두 가지를 이야기 하는데 하나는 성차별이고 다른 하나는 부부가 같은 과에서 근무하는 것을 꺼리는 연고자 임용에 반대하는 분위기였다고 하는데 두 번째 이유는 핑계에 불과하고 솔직히는 성차별 때문이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예로 수학에서는 힐버트(Hilbert)의 강력한 추천에도 불구하고 정식 교수가 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그래서 4년간 힐버트의 이름으로 강의했던, 천재 여성 수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인 뇌더 (Noether) 가 있습니다.)

마리아는 1972년 세상을 떠났고 미국 물리학회는 매년 뛰어난 젊은 여성 물리학자에게 그녀의 이름을 딴 마리아 괴퍼트-메이어 상을 수여합니다. 또한 시카고 대학에서도 매년 뛰어난 여성 과학자나 공학자에게 상을 주고 있고 샌디에고 대학은 매년 여성과학자들을 초청해 과학에 대한 토의를 하는 마리아 괴퍼트-메이어 심포지엄을 개최합니다.

그녀에게 노벨상을 가져다준 원자핵 모형 외에 마리아는 많은 연구를 했는데 1931년 박사학위 논문은 2 개의 광자 (photon) 흡수 현상에 관한 것으로 이를 확인 하는 첫 실험이 1960년대에 가서야 가능했던 만큼 시대를 훨씬 앞선 연구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2 개의 광자 산란 단면적의 단위는 GM (Goeppert-Mayer) 단위로 부릅니다.




 <비정규직일 때와 정규직일 때의 마리아 괴퍼트-메이어. 출처: http://www.uni-goettingen.de, http://www.dw-world.de>

 


2009년 6월 11일 목요일

왜 운동량은 p 로 쓸까?

 

아메리컨 저널 오브 피직스 (American Journal of Physics)는 미국의 물리 교육에 관한 저널입니다. 교육방법이외에도 물리학에 등장하는 사건, 개념, 주요 연구 분야등에 대해 알기 쉽게 쓴 논문들도 출판합니다. 그 중에는 평소에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친 문제나 토픽도 있습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일반 물리학이나 교양 물리 서적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접하는 물리령중의 하나가 운동량입니다. 운동량은 질량과 속도의 곱이며 p로 표시합니다. 따라서 p=mv 라고 씁니다. 여기서 m은 질량, 영어로는 mass이고 v 는 속도, 즉 velocity입니다. 많은경우 물리량을 표시할 때는 영어 단어의 첫 알파벳을 따서 씁니다. 위의 m과 v의 경우처럼. 물론 표시하고자 하는 물리량들의 첫번째 알파벳이 겹치는 경우에는 다른 알파벳을 씁니다. 그러면 운동량은 왜 p 로 나타낼까요? 운동량은 영어로 모멘텀, momentum 이고 첫번째 알파벳이 질량과 같은 m 입니다. 질량이 더 중요한 양이기 때문에 먼저 m을 질량에게 주고 운동량에게는 다른 문자를 주었을까요? 재미있는 것은 위 식 p=mv 가 처음 등장한 곳은 뉴턴이 쓴 프링키피아에서라고 합니다. 그러면 뉴턴은 왜 운동량을 p로 썼을까요. o 나 n, t 도 있는데. 혹시 운동량의 p 는 puissance 라는 단어에서 왔을까요? 하지만 puissance 는 '힘'에 가까운 단어인데, 운동량과는 다르죠. 그러면 imPulse의 p에서 왔을까요? 이 질문은 아메리컨 저널 오브 피직스, vol 62 (1994년) 871 페이지의 '질문과 대답'란에 실린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미 해군 항공 전쟁 센터의 Gillespie 라는 연구원에 의해 같은 저널의 vol 63 (1995년) 의 297 페이지에 실렸습니다. 이 설명이 정말로 맞는 설명인지는 뉴턴이 밝히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추측만 할 뿐이죠. 어쨌든 설명은 이렇습니다.


이것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momentum이라는 말이 뉴턴 시대에도 쓰였는지 알아야 합니다. 오래된 과학책에서는 mimentum 이라는 말이 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단어의 뉴턴 시대의 형태는 pimentum 이었다고 합니다. 즉, momentum의 고어는 pimentum 으로


\mbox{pimentum} \to \mbox{mimentum} \to \mbox{momentum}


이 되었고 만약 이게 맞다면 운동량이 p가 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 됩니다. 그 당시 운동량은 pimentum 이었으니까요.

당시에는 물론 운동량의 개념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운동량이라는 단어도 없었습니다. 그 개념을 처음 생각한 사람이 뉴턴이었으니까요. 그러면 뉴턴은 왜 운동량을 pimentum 이라 불렀을까요?

pimentum 이라는 말은 pimento 라는 단어를 연상 시킵니다. pimento는 포르투칼어로 체리페퍼라고도 합니다. 또는 우리가 잘 아는 피망을 가르키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 pimento는 올리브 열매로 피클을 만들 때 올리브 열매 내부를 채우는 데 쓰입니다. 물론 뉴턴 시대에도 그랬다고 합니다. 한편 뉴턴은 일반적으로 조용하고 다른 사람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군요. 한창 때의 뉴턴은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로 여러 모임에도 참가하고 밤 늦도록 파티에서 와인을 마시며 물리학의 많은 아이디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면은 볼프강 파울리와 비슷하네요.)  pimentum의 탄생은 어느 날 파티에서 칵테일을 마실 때랍니다. 그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칵테일 잔에 녹색 올리브를 꽂아 두었는데 뉴턴과 친구들은 그 걸 가지고 놀다 올리브 속의 pimento가 올리브 구멍으로 부터 잘 빠져나오지 않는다는 걸 보았습니다. pimento는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올리브 속에 그대로 머무르려 한다 는 것을 본 것이죠. 물론 이 성질을 질량과 속도의 곱에 연관 시킬 수 있는 사람은 뉴턴 뿐이었고 그는 이 물리량을 pimento에서 이름을 따 pimentum 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왼쪽의 그림처럼 올리브속을 채우고 있는 빨간 체리페퍼는 잘 빠져 나오지 않습니다.>

 

조금은 허탈한 대답인데 비슷한 이야기가 팽귄 다이아그램의 유래에도 있습니다. 펭귄 다이아그램은 파인만 다이아그램의 하나로 현 표준모형의 CP 깨짐에 중요합니다. 이를 제안한 사람은 CERN의 존 엘리스 (John Ellis) 입니다. 사실 다이아그램이 펭귄을 그리 연상시키지는 않는데 펭귄 다이아그램이라 부르는 이유는 엘리스가 다트게임에서 졌기 때문입니다. 다트게임을 하다 졌는데 그 벌칙이 엘리스의 다음 논문에 팽귄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스는 그 후 자신이 공부하고 있던 파인만 다이아그램을 찌그려뜨려 새 모양(?)을 만들고 이를 펭귄 다이아그램이라고 불렀습니다.

<펭귄 다이아그램>




2009년 6월 9일 화요일

핵물리학의 연구 방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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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포스트했던 2008년 NSAC의 핵과학 장기 연구 계획서의 다음 부분인 최근 6년간 이루어진 연구중 NSAC가 중요한 연구라고 평가한 8개의 연구 요약입니다. 먼저 4개의 연구를 소개합니다.

 

준완전 액체 (Near-Perfect Liquid)

최근에 이루어진 가장 놀라운 발견중의 하나가 상대론적 중이온 충돌기 (RHIC, Relativistic Heavy Ion Collider)에서 금(gold)의 원자핵을 가속시켜 충돌시킬때 먼들어지는 뜨거운 물질이 거의 완벽한 완전 액체(perfect liquid)처럼 팽창다는 것이다. 액체의 흐름을 방해하는 저항을 나타내는 양은 점도와 엔트로피 밀도의 비율 (\eta/s) 인데, 상대론적 중이온 충돌시 측정된 이 양은 지금까지 알려진 어느 액체보다도 더 작다는 것이 발견됐다. 사실 이 값은 아주 작아서 최근 끈이론의 방법을 응용해서 얻어지는 최소값의 한계에 가깝고 따라서 이는 RHIC에서 만들어진 쿼크-글루온 플라즈마가 애초 예상했던 묽은 가스와 같은 플라즈마가 아니라 강하게 엮여있는 플라즈마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발견은 미시적이고 집단적인 성질이 양자현상에 기인하는 극고온/고밀도 플라즈마 연구라는 물리학의 새로운 분야를 열었다. 향후 10년간 수행될 가장 중요한 과학적 연구의 하나는 이 새로운 물질의 상태를 정량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bnl.gov>

 

핵자의 스핀 (Spin of the Nucleon)

핵자, 즉 양성자와 중성자는 강한 상호작용에 의해 구속된 쿼크와 글루온으로 된 복잡하고 동적인 입자다. 지금까지 발견된 핵자의 구조는 QCD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해준다. 실험과 이론을 병행함으로써, 예를 들면, 쿼크가 핵자 안에서 메존 비슷한 클러스터를 만드는지 그리고 다른 종류(flavor)의 쿼크가 갖는 공간분포와 운동량분포가 어떻게 다른지 등을 알 수 있게 한다. 그 중 가장 흥미있는 문제중 하나는 핵자의 고유 각운동량인 스핀이다. 핵자의 스핀은 1/2이고 우리가 QCD를 이해했다고 한다면 이 값이 핵자의 내부 구조에서 어떻개 얻어지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제퍼슨 연구소 (JLab)와 독일 DESY의 최근 실험은 uud로 만들어진 양성자에서 u 쿼크의 스핀은 양성자의 스핀과 같은 방향으로 정렬이 되고 d 쿼크는 반대 방향으로 편극되있고, s 쿼크는 거의 편극이 되지 않음을 보인다. 이를 다 종합하면 쿼크의 스핀은 양성자 스핀의 약 30%만을 차지한다. 최근 기대되었던 RHIC의 실험은 핵자의 스핀에 대한 글루온의 역할을 더 자세히 알게 하지만 핵자의 스핀이 어떻게 나뉘는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로 남아있다. 이에 대한 해답은 RHIC과 JLab의 CEBAF (12 GeV로 업그레이드된 후)에서 행해질 실헙에서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기술로는 핵내의 쿼크와 글루온이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을 커버하지 못한다. "대자연"이 핵자의 스핀을 현 실험장치로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에 숨겨 놓았다면 핵자의 스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과 기술이 요구된다.

 

 

<이미지 출처: http://www.jlab.org>

 

제트 퀜칭 (Jet Quenching)

QCD 제트는 모든 종류의 초고에너지 충돌에서 일어나는데 입사하는 쿼크와 글루온의 강한 산란 (hard scattering)과 그것들로부터 생기는 입자의 분사로 발생한다. 제트는 RHIC의 양성자-양성자 (proton-proton) 충돌, 중수소-금원자핵 (deuteron-gold) 충돌, 금원자핵-금원자핵 (gold-gold) 충돌에서 관측되었다. 이 중 드라마틱한 변화가 금원자핵-금원자핵 충돌에서 생기는 제트의 분포에서 생긴다. 양성자-양성자 충돌이나 중수소-금원자핵 충돌에서는 백투백 (back-to-back)의 제트가 전형적으로 관측된다.즉 두 개의 제트가 반대방향으로 진행한다. 하지만 거의 정면 충돌시 금원자핵-금원자핵 충돌에서는 이 패턴이 사라지고 하나의 제트만 관측된다. 이것이 제트 퀜칭이다. 이는 2차 제트를 만드는 산란된 쿼크와 글루온이 충돌 후 생성되는 (보통의 핵자보다 밀도가 100배가 되는) 물질을 통과하면서 많은 에너지를 잃어 버린다는 것(energy loss)을 암시한다. 최근의 결과는 이런 고에너지 제트의 잃어버린 에너지가 집단적인 충격파(sonic boom)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이 제안이 옳다면 이 새로운 물질에서 소리의 속도 (speed of sound)를 결정할 수 있다. 제트 퀜칭의 효과는 이 격렬한 충돌에서 생기는 쿼크-글루온 플라즈마에서 글루온 밀도를 연구하는 새로운 방법을 열게 된다.

 

 

<이미지 출처: http://www.lbl.gov>

 

중성자의 전하 분포

 

중성자는 이름 그대로 전기적으로 중성이며 전하를 갖는 양성자의 짝이다. 하지만 중성자는 양성자와 비슷한 자기적 (magnetic) 성질을 갖고있으며 이는 그것의 내부 구조가 아주 복잡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JLAB과 MIT의 Bates 연구소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10여년 계속된 편극된 빔과 타겟을 이용한 실험 결과 중성자의 전하 분포가 훨씬 자세하게 알려졌다. 중성자의 중심부는 양의전하를 갖고 있다. 중성자의 중심부를 둘러싸는 메존 구름은 음전하를 띠고 있어 전체적으로 중성이된다. 이 새 결과는 중성자의 전자기적 성질을 규명하려는 이론, 특히 lattice QCD에 매우 강한 강제 조건을 제시한다.

 

<이미지 출처: http://www.jlab.org>

 


2009년 6월 8일 월요일

핵물리학의 연구 방향 1

 

2006년 7월 미국 에너지성 (DOE)과 국가 과학 재단 (NSF)는 핵과학 자문위원회 (Nuclear Science Advisory Committee, NSAC)에 미국 핵과학의 미래와 차후 10년간 미국 핵과학의 진흥을 위한 장기 연구 계획에 대한 연구를 의뢰했고 그 결과로 2008년 9월 텍사스 A&M 대학의 트리블을 위원장으로하는 59명의 학자들이 보고서를 발표했다. (원문은 여기) 이 중장기 연구 계획에 대한 보고서는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현재와 가까운 미래의 연구 주제를 엿볼 수 있다. 2008년 보고서에서 제시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양자색역학 (QCD, Quantum Chromodynamics)

    강하게 상호 작용하는 물질의 상 (phase)은 무엇이며 우주에서의 역할은 무엇인가?

    핵자의 내부 구조는 어떠한가?

    강하게 상호 작용하는 물질에 대해 QCD의 예측은 무엇인가?

    무엇이 쿼크와 글루온을 파이온과 핵자로 만들어 주는가?

    핵자와 핵에서 글루온의 역할은 무엇이며 또 글루온 스스로의 상호작용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QCD의 주요 본질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이고 중력과 시공간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

 

원자핵과 핵우주물리 (Nuclei and Nuclear Astrophysics)

    양성자와 중성자를 묶어 안정된 원자핵과 희귀 동위원소를 만드는 핵력의 본질은 무엇인가?

    복잡한 원자핵에서 나타나는 간단한 패턴의 원인은 무엇인가?

     중성자별과 조밀한 핵물질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주에 있는 원소는 어떻게 생겨났나?

    태양과 별을 빛나게 하는 핵반응은 무엇인가?

 

  기본 대칭성과 뉴트리노 (Fundamental Symmetries and Neutrinos)

    뉴트리노의 성질은 무엇이며 질량은 얼마인가? 또 뉴트리노가 어떻게 우주의 진화에 관여하는가?

    현 우주에 반물질보다 물질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초기 우주에는 존재했다가 우주가 진화하면서 사라져버린 보이지 않은 힘은 무엇인가?

 

 

 

<NSAC의 멤버들>

 


2009년 6월 6일 토요일

미시건에 세워질 FRIB

 

10년 후 미국 핵물리학의 중요 연구소가 될 희귀동위원소 빔 가속기 (FRIB, Facility for Rare Isotope Beams)가 미시건주 이스트 랜싱의 미시건 주립대학(MSU)에 세워진다고 작년 말 (2008년 12월 11일) 미국 에너지성 (DOE)이 발표 했습니다. 그 동안 이를 따기 위해 일리노이주에 위치한 알곤 (Argonne) 국립연구소와 치열하게 경쟁을 했는데 결국 미시건이 이겼군요. 자동차 산업의 몰락으로 침통해진 미시건주에 약간의 위로가 될지... 총 공사비는 5억5000만 달러, 1 달러 = 1250원으로 환산시, 약 6,900억원의 사업입니다. 물론 추후 연구소 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제외고 실제 공사비는 항상 그렇듯 예상보다는 더 들어갈 것입니다. 건설에서 완공까지는 약 10년을 예상하고 있으며 약 1000명의 연구진 (연구원, 대학원생 포함)이 희귀 동위원소와 우주의 진화에 대해 연구할 계획입니다. 실제 건설은 2013년 시작될 예정이고 미시건주에 10억 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합니다. 이로써 하마터면 문을 닫을 뻔 했던 미시건 주립대학의 핵물리 연구소인 사이클로트론 연구소 (NSCL National Superconducting Cyclotron Laboratory)는 극적으로 살아났고 미시건 주립대학은 향후 미국 핵물리학 연구의 새로운 메카가 되기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핵물리학계는 제퍼슨 연구소의 CEBAF, 브룩하븐 연구소의 RHIC과 함께 세 개의 대형 장난감(?)을 가지게 됩니다.

 

 

 

<MSU에 세워질 FRIB의 예상되는 설계, 이미지 출처 : https://www.orau.org>

 

 

 

<FRIB를 호스트하도록 응원하는 MSU 학생들, 이미지 출처 : www.statenews.com>

 

FRIB는 1996년 NSAC (핵과학 자문 위원회)의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제안된 이 후 DOE와 NSF 의 많은 위원회의 검토 및 연구를 거쳐 최종 승인이 나기까지 대략 10 여년이 걸렸습니다. (2008년 NSAC의 보고서에서 다시 한번 FRIB를 강하게 추천했습니다.) FRIB의 연구 목적은 핵우주론 (Nuclear Astrophysics)과 핵 구조론 (Nuclear Structure) 연구로 다음과 같은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 태양과 별의 에너지원인 원자핵사이의 반응
  • 원자핵의 구조와 핵을 묶는 힘
  • 물질의 기본 성질에 대한 이론 검증
  • 새로운 핵의학과 기술 발전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포스트할 예정입니다.


2009년 6월 4일 목요일

아인쉬타인의 논문을 리젝트한 사람

 

논문을 쓸때 보통 어느 저널에 보낼것인지를 대략은 생각하며 논문을 완성합니다. 논문을 저널에 보내게 되면 저널의 에디터, 즉 편집자는 그 논문이 자기 저널에 발표될 가치가 있는지를 따져 출판 여부를 결정합니다. 따라서 에디터는 그 분야의 전문가 중에서 널리 알려진 학자입니다.  보통의 경우 논문의 출판여부는 전적으로 에디터가 결정합니다. 하지만 에디터가 신이 아닌 이상 자기 전공의 모든 분야를 다 잘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출된 논문을 리뷰어 (또는 레프리)에게 리뷰를 의뢰합니다. 리뷰어는 통상 제출된 논문의 전공자, 즉 그 분야에서 나름대로 인정된 사람들중에서 선택하며 대개 1-2명이지만 3명 이상까지 선정하는 저널도 있습니다. 레프리는 보통 2-3주안에 심사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권고받지만 그 기한을 지켜 제출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수고비나 심사료 같은 것은 물론 없습니다.) 에디터는 논문의 출판여부를 리뷰어의 권고에따라 결정합니다. 현 논문 그대로 출판, 어느정도 수정후 출판, 또는 퇴짜 등. 논문의 저자 또한 이에 해당하는 권리를 갖습니다. 논문을 수정해 다시 제출하거나 리뷰어를 바꾸어 달라고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받아들이거나 무시하는 것은 전적으로 에디터의 권한이지만요. 논문의 저자와 레프리의 의견이 충돌하면 몇 달을 두고 싸우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판단은 에디터가 하지만 이견이 해소되지 않을 때 결국에는 명망있는 학자들로 구성된 편집위원회까지 올라가기도 합니다.  흔히 오해하는 것중의 하나가 어떤 논문이 유명 저널에 실렸으니 논문의 내용이 검증되었고 이를 인정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레프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논문의 내용을 검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레프리가 보는 것은 주로 논문의 주장이 타당한지, 논리의 비약은 없는지, 입증된 기반에서 논증을 시작하는지, 기존의 입증된 사실과 어긋나지 않는지, 논문에 발표된 계산 혹은 실험이 타당하고 다른 학자에의해 검증이 될 수 있도록 내용이 충실한지, 그리고 참고문헌이 공정하고 바르게 되어있는지 등입니다. 기존의 이론/실험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리젝트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근거를 더 자세히 기술해야하고 레프리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레프리가 그 논문의 계산이나 실험을 재현해서 검증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검증은 논문이 출판된 후 다른 연구에 의해 행해집니다.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쓴 논문이 리젝트되면 그 기분은 어떨까요?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 보통의 경우 대개 유럽 또는 미국의 저널을 고려합니다. 이 때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 또는 속해 있는 학교나 연구소가 있는 지역의 저널은 고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유럽의 학자들은 유럽의 저널을, 미국의 학자들은 미국에서 발행되는 저널을 주로 고려합니다. 물론 개인마다 다른 취향이 있어 특정 저널만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지만 논문을 발표할때 자기 지역의 저널을 주로 이용하는게 보편적입니다. 따라서 유럽에 있을 때는 유럽의 저널에 미국에 있을 때는 미국의 저널에 주로 발표하게 됩니다. 아인쉬타인은 1933년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독일에 있을 때는 물론 독일의 저널에 주로 논문을 투고했습니다. 1905년 벌표된 상대성이론을 포함한 그의 유명한 논문 5편은 모두 아날렌 데어 피직 (Annalen der Physik)을 통해 세상에 나왔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온 후에는 미국 물리학회의 공식 저널인 피지컬 리뷰(Physical Review)를 주로 이용했습니다. 1935년 EPR 논문이나 1936년 웜홀에 관한 논문들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1936년의 논문이 아인쉬타인이 피지컬 리뷰에 발표한 마지막 논문이 되었습니다. (1952년의 reply 형식의 출판이 유일한 예외입니다.) 아인쉬타인이 피지컬리뷰를 떠난 이유는 1936년 로젠 (Rosen)과 함께 쓴 중력파에 대한 논문에 대한 피지컬리뷰의 레프리 리포트를 받은 후 부터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퇴짜를 받은 것입니다. 아인쉬타인은 로젠과 함께 '중력파는 존재하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1936년 6월 1일 피지컬리뷰에 보냈고 이에 대한 답장을 (7월 23일자) 10장에 걸친 리뷰와 함께 받았습니다. 그 결과 7월 27일 피지컬리뷰의 에디터는 분노에 찬 답장을 받습니다.

 

Dear Sir,

  We (Mr. Rosen and I) had sent you our manuscript for publication and had not authorized you to show it to specialists before it is printed. I see no reason to address the -- in any case erraneous -- comments of your anonymous expert. On the basis of this incident I prefer to publish the paper elsewhere.

Respectfully,

P.S. Mr. Rosen, who has left for the Soviet Union, has authorized me to represent him in this matter.

 

<우리는 그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 귀하께 보냈지만 그 눈문이 출판되기 전에 귀하의 전문가에게 보이는 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귀하의 익명의 전문가의 코멘트에  - 어쨌던 틀린 코멘트지만 -  답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이 논문을 다른 곳에 출판할 것입니다.>

 

논문을 피지컬리뷰에서 철회한 후 아인쉬타인은 그 논문을 필라델피아의 Journal of the Franklin Institute에 보내고 이 논문은 수정없이 승인이 되었고 곧 출판되었습니다. 하지만 논문에는 중대한 수정이 있었고 결론 또한 피지컬 리뷰에 제출했던 논문의 결론과 반대였습니다. 비록 피지컬 리뷰에 제출된 논문의 사본은 남아 있지 않지만 정황상 그리고 간접적인 문헌으로 첫 번째 논문에서 '중력파는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아니오'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Journal of the Franklin Institute에 출판된 논문에서는 결론은 '예'로 바뀌었습니다. 분명히 레뷰어의 코멘트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죠. 그러면 아인쉬타인의 논문을 심사하고 리젝트한 사람은 누구일까? 원칙적으로 리뷰어의 신원은 밝히지 않지만 이 경우에는 논문과 심사에 관련된 학자들이 모두 사망한 경우라 미국물리학회에서 이를 공개했습니다. 피지컬 리뷰의 기록에 따르면 논문을 1936년 6월 1일 접수가 되었고 6월 6일 레프리에게 보내졌습니다. 레프리의 리뷰는 7월 17일자로 접수 되었고 7월 23일 아인쉬타인에게 통보되었습니다. 레프리는 프린스턴에서 연구하던 상대성이론 전문가인 하워드 펄시 로버트슨(H.P. Robertson)이었습니다. 그는 아인쉬타인의 동료로 같은 곳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칼텍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휴가차 아이다호주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논문의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잘못된 부분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인쉬타인의 논문을 리젝트 했던 로버트슨, 이미지출처 : photos.aip.org>

 

리뷰어 제도가 먼저 정착이 된 것은 유럽보다 미국이 더 빨랐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유럽저널들의 논문 리젝트 비율을 5-10%를 넘지 않았다고 합니다. "논문이 없는 것보다는 틀린 논문이라도 싣자"라는게 그들의 생각이었고 플랑크는 이를 크게 비판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아인쉬타인의 논문은 레프리의 리뷰없이 곧장 출판승인되었기 때문에 레프리 리포트를 벋은것은 위의 경우가 차음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논문을 레프리하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레프리의 원래 목적이 논문의 오류를 바로 잡고 독자를 위해 더 읽기 좋은 방향으로 논문 수정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생각하면 책임감이 더 무거워집니다. 아인쉬타인의 논문에 수정을 요구했던 로버트슨은 레프리의 역할을 훌륭하 수행한 좋은 레프리라 할 수 있겠죠.


<아인쉬타인의 70회 생일기념사진. 제일 왼쪽이 로버트슨, 이미지출처 : photos.aip.org>

 

(추가: 아무리 위대한 학자라도 모든 논문이 다 오류가 앖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아인쉬타인의 경우는 참고문헌에 놀라울 정도로 무신경이었다고 합니다. 1905년의 논문들은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참고 문헌의 문제로 최소 한 번은 수정을 요구 받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나중에 인펠트 (Infeld)가 그와 함께 책을 쓰면서 '산생님의 이름으로 책이 나가기 때문에 혹여 틀린 곳이라도 있을까 아주 많이 신경을 쓴다'고 하니 아인쉬타인은 크게 웃으며 '그럴 필요 없다네. 내 이름으로 나간 논문중 틀린 논문들도 있으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