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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7일 화요일

쇤 사건 2

 

두 논문의 그림이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고 쇤은 그림이 실수로 섞여서 들어갔다고 말하고 에라텀을 냈습니다. 한 번의 실수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집니다. 코넬대학의 폴 맥유엔이 쇤의 이전 논문인 사이언스 287, 1022 (2000)에서 같은 꼬리 모양의 그림을 찾은 것입니다.


<출처: J. H. Schön, S. Berg, Ch. Kloc, and B. Batlogg, Science 287, 1022 (2000)>

이 그림 또한 앞의 두 그림과 아주 흡사합니다. 앞의 두 그림의 경우 x-축의 범위는 같고 y-축의 범위는 하나는 0-0.2, 다른 하나는 0-2.0로 10배라 비슷하게 보입니다. 따라서 실수할 확률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그림은 x-축은 0-10, y-축은 0-10으로 앞의 두 경우와 확연히 다릅니다. 이제 세 그림을 같이 놓으면 이렇게 됩니다.


<출처: Physicstoday.org>

 

세 그림의 유사성이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이는 단순한 실수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맥유엔과 리디아 손은 비슷한 그림을 다른 논문에서 더 찾아냈습니다. 그래서 위와 유사한 그림이 모두 사이언스, 네이쳐,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등 세 개의 저널에서 실린 모두 여섯 개의 논문에서 발견됩니다. 이 사실에 과학계는 경악합니다. 더구나 위 논문들의 상당수는 벨 연구소의 저명한 학자인 배트록 (Bertram Batlogg, 이 당시에는 벨 연구소를 떠나 스위스의 ETH Zuerich로 옮겨 있었습니다.) 이 공동 저자로 참여해 있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컸고 쇤은 전도 유망한 젊은 학자였기에 많은 이들은 저자들의 명성에 흠이되지 않는 이성적이고 적절한 설명이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벨 연구소의 수뇌부에게 들어가고 물리과학부의 부소장 체리 머레이는 2002년 5월 스탠퍼드 대학의 말콤 비즐리 (Malcolm Beasley)에게 이 사건의 조사를 의뢰하게 됩니다. 비즐리는 벨 연구소 내부인사와 외부인사를 아우르는 위원회를 조직하고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즐리 위원회는 벨 연구소 내부와 외부로 부터 많은 양의 정보를 제공 받았습니다. 벨 연구소는 국가 기관의 연구비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연방 정부의 과학 부정행위에 관한 정책을 따를 의무는 없지만 벨 연구소와 비즐리 위원회는 연방 규칙에 따라 조사를 시행하고 공정함과 철저함을 원칙으로 이 사건을 끝까지 파헤치기로 합니다. 조사 기간 동안 위원회는 벨 연구소의 어느 장소나 들어갈 수 있고 어떤 책이나 보고서를 열람할 수 있으며 연구소측의 철저한 협조를 약속 받습니다. 이제 유기 화합물로 초전도체, 레이저, 조세프슨-정크션, 단분자 트랜지스터를 만들 수 있다는 정말로 획기적인 벨 연구소의 연구는 조작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철저하지 못한 실험 노트 정리와 실수로 여겨졌던 사건이 논문 조작이라는 대형 사건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비즐리 위원회는 첫번째 조사를 6월 말에 마치고 2002년 9월 127 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이 보고서는 벨 연구소의 약속대로 곧바로 일반에게 공개되었습니다. 비즐리 위원회는 20명의 공동저자를 포함한 25개의 논문에서 24건의 혐의를 조사하였습니다. 이 모든 논문의 공통점은 바로 얀 헨드릭 쇤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쇤 혼자 샘플을 만들고 측정을 했으며 (초벌) 논문을 썼습니다. 더구나 샘플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기계는 벨 연구소가 아니라 쇤이 박사학위를 한 독일의 콘스탄츠 대학에 있었습니다. 쇤은 그 기계가 더 익숙하다는 이유로 벨 연구소의 기계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죠? 아무래도 대학교의 기계보다는 벨 연구소의 기계가 더 좋을 것 같은데.) 비즐리 위원회는  24건의 혐의중 16건에 대해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위원회의 조사는 벨 연구소의 적극적 협조에도 불구하고 쉽지는 않았습니다. 원 데이터를 요구하는 위원회에게 쇤은 데이터 파일을 더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그는 그가 가지고 있던 낡은 컴퓨터의 낮은 하드디스크 용량때문에 지워버렸다고 답합니다. (벨 연구소에 있는 최첨단 컴퓨터는 왜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는 또 다시 시험해볼 수 있는 샘플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실험도중이나 이사하면서 파손되었답니다. (어디서 많이 들은 듯 하죠?) 더구나 콘스탄츠에 있던 기계도 더 이상 샘플을 생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위원회는 다른 보든 자료를 긁어 모았습니다. 컴퓨터에 남아 있던 논문의 초고 파일, 그림 파일, 프리젠테이션 파일등 면밀히 검토하였습니다. 그리고 논문 조작의 결정적 증거들을 찾아 냅니다. 쇤만 똑똑한 게 아니거든요.




2009년 6월 30일 화요일

쇤 사건 1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mahabanya님께서 숙제를 주셨군요. 조금 생각해야 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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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헨드릭 쇤 (Jan Hendrik Schoen) 사건은 아주 유명한 사건으로 과학에서 부정행위를 논할 때 항상 등장하는 사건으로 여러 책에서 그 사건의 시작과 진행 그리고 결말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이 사건을 다시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쇤은 부정행위가 밝혀지기 전까지 언젠가는 노벨상을 수상할 강력한 후보였으나 부정행위가 탄로나면서 모든게 거품이되어 사라져버렸습니다.

 

쇤은 1970년 독일에서 출생하여 응집물질과 나노기술을 연구한 물리학자 입니다. 그는 1997년 독일의 콘스탄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곧바로 미국의 유명한 벨 연구소 (Bell Labs)으로 들어갑니다. 그 후 그는 엄청난 논문을 엄청난 속도로 쏟아냅니다. 그로 인해 2001년 오토-클룽-베버뱅크 상과 브라운쉬바이크 상을 수상하고 2002년에는 재료과학회의 뛰어난 젊은 과학자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연구가 어느 정도였냐면 가장 논문을 많이 쓴 2001년에는 평균 8일에 한편꼴로 논문을 썼습니다. (그 해에 약 45편의 논문을 쓴 셈입니다. 훗날 사이언스가 철회한 쇤의 논문은 8편, 네이쳐가 취소한 논문은 7편입니다.) 특히 네이쳐에 기고한 논문은 분자 규모에서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이는 학계는 물론 산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킵니다. 실리콘을 이용한 반도체 기술이 더 이상 크기를 축소하기 어려운 경지까지 도달하여 이른바 무어의 법칙이 깨지게 되었는데 분자를 이용한 기술이 가능하면 무어의 법칙은 다시 살아나고 지금보다 훨씬 작은 전자기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논문은 실리콘의 시대를 끝내고 분자단위의 트랜지스터 시대의 문을 열어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을 여는 것입니다. 계속 승승장구한 그는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렸습니다. 그가 손대는 실험은 항상 성공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논문을 시작으로 정점에 올라있던 그의 이력에 먹구름이 닥쳐옵니다. 항상 그렇듯 작은 곳에서부터 문제가 터져 나옵니다.

 

쇤의 논문은 아주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같은 실험 결과를 재연하여 그 논문을 검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런 중요한 실험은 처음이 아닌 두 번째 성공 사례라해도 좋은 저널에 실릴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 결과를 가른 그룹이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은 그 발견을 확실히 해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가 빨리 똑같은 결과를 재연하는가기 위한 경쟁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쇤의 실험과 같은 조건을 주고 같은 샘플로 실험을 했지만 쇤의 결과를 재연하는 데는 모든 그룹이 실패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누구도 쇤의 논문이 가짜라거나 부정하다고 이의를 제기할수는 없습니다. 실험에는 많은 노하우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쇤의 실험은 이미 논문으로 출판이 되었기 때문에 그 결과를 다시 만들어 내는데 실패한것은 우선 후속 연구자가 해결할 문제인거죠. 쇤은 자신의 논문과 실험을 방어할 의무는 있지만 후속 연구자의 문제나 실수를 찾아내거나 노하우를 가르쳐 줄 의무는 없습니다.


쇤 사건은 쇤의 논문에 실린 한 그래프에서 시작됩니다. 쇤이 논문을 발표한 후 벨 연구소내부에서는 쇤이 쓴 논문중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의 그림과 네이쳐에 실린 논문의 그림이 아주 비슷하다는 소문이 나돕니다. (아래 그림)  두 그림을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논문을 읽을때 중요한 점만을 보기 때문에 그런 꼬리 부분은 눈여겨 보지않으면 알기 힘듭니다.



<왼쪽 그림의 출처는 J. H. Schoen, H. Meng, and Z. Bao, Nature 413, 713 (2001),

오른쪽 그림의 출처는 J. H. Schoen, H. Meng, and Z. Bao, Science 294, 2138 (2001).>

 

두 그림이 아주 비슷합니다. 특히 꼬리 부분 (x 축의 오른쪽 끝 부분)을 확대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두 그림의 유사성이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이는 쇤의 실험을 재연하기위해 노력하던 프린스턴대학의 리디아 손에게 알려졌고 저널의 에디터에게도 전달됩니다. 에디터는 이를 논문의 주저자인 쇤에게 통보합니다. 두 논문의 주저자인 쇤은 곧 데이터가 섞여서 그래프가 잘못 나왔다고 잘못을 시인하고 교정된 그래프를 보내 사이언스지에 에러텀를 냅니다. 물론 그 논문의 주 내용과 결론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이언스 296, 1400 (2002)에 실린 사이언스 294, 2138 (2001)의 수정된 그림 (오른쪽)>

 

이제 두 그림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논문을 쓸 때 이런 커다란 실수를 하면 안되죠. 하지만 사실 논문을 많이 쓰다 보면 주의력이 떨어져 그런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네이쳐나 사이언스같은 저널에 내는 논문이라도 말이죠. 더구나 쇤은 두 저널에 아주 많은 논문을 실었으니까 실수도 가능할겁니다. 실수로 그림이 잘못 올라간 경우에는 이렇게 에라텀을 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비난을 받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 실수가 고의가 아닐 때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선의의 실수로 인한) 에러타가 자꾸 나오게되면 학자로서의 신용도가 떨어지므로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합니다. 이렇게 마무리가 될 것같았는데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