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2일 금요일

비정규직 30년의 노벨상 수상자, 괴퍼트-메이어


마리아 괴퍼트-메이어(Maria Goeppert-Mayer)는 1906년 독일의 카토비츠 (현재는 폴란드 영토)에서 태어난 여성 물리학자로 뀌리 부인에 이어 여자로서는 두 번째로 196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학자입니다. 당시 공동 수상자는 비그너(Eugine P. Wigner)와 엔센(J.H.D. Jensen)입니다. 그녀는 원자핵에 대한 nuclear shell model을 제안하여 원자핵의 구조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박사학위는 1931년 독일의 괴팅엔 대학교에서 받았지만 정규 교수직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약 30년 뒤인 1960년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주립대학 (UC San Diego)에서 입니다. 이 때 나이는 53세 이었습니다. 정규 교수직을 받은 3년 후 노벨상을 받았고 1972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리아의 (우연히도 뀌리부인의 이름과 같습니다) 집안은 대대로 학자인 집안으로 아버지 프리드리히 괴퍼트는 소아과의사였습니다. 나중에 마리아가 교수가 됨으로써 아버지 혈족을 따지면 마리아는 7대째 교수가 됩니다. 1910년 아버지가 괴팅겐 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가족이 모두 괴팅엔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괴팅겐은 그 당시 가장 뛰어난 과학자들이 많이 있었던 곳입니다. 엔리코 페르미, 볼프강 파울리, 폴 디락, 베르너 하이젠베르그등이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대학에 가는 것은 독일에서도 아주 드물었다고 합니다. 그 동네에서 여학생에게 아비투어를 준비시키는 사립학교가 딱 하나 있었는데 당시의 경제난으로 인해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그 학교의 교사들은 학교가 문을 닫았음에도 계속 학생들을 지도했고 1924년 하노버에서 아비투어를 치룰 수 있었습니다. 1924년 마리아는 드디어 괴팅겐 대학교에 등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수학자가 되길 원했지만 당시 등장한 양자역학에 빠져 물리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그녀를 가르쳤던 교수 중에는 막스 보른, 아돌프 빈다우스, 제임스 프랑크 등  세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있었습니다. 영국의 케임브리지에서 보낸 한 학기를 제외하고 마리아는 괴팅엔에서 공부를 계속하여 1930년 막스 보른을 주 지도교수로 하여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24살 때의 일입니다.

졸업하기 전 미국의 록펠러 재단의 후원으로 제임스 프랑크와 일하던 미국인 조세프 에드워드 메이어를 만나고 1930년 결혼합니다. 그리고 곧 남편이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 홉킨스 대학의 교수가 되면서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이때부터 기나긴 비정규직의 길을 걷습니다. 마리아의 남편은 1931년부터 1939년까지 존스홉킨스 대학교, 1940년부터 1946년까지는 콜롬비아 대학교, 그리고 그 이후에는 시카고 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였습니다. 그동안 마리아는 남편을 따라 다녔지만 정식 교수로는 채용이 되지 못했습니다. 사라 로렌스 대학, 콜롬비아 대학, 로스 알라모스 국립 연구소에서 연구원을 했고 시카고 대학에서는 계약교수, 그 후 아르곤 국립연구소에서는 파트타임 시니어 연구원으로 근무했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연구를 한 곳은 시카고와 아르곤에서였습니다. 1960년 마리아는 드디어 캘리포니아 라 졸라 주립대학 (현 샌디에고 주립대학)에 남편과 함께 정식 교수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녀가 오랫동안 정식 교수가 되지 못한 이유로 두 가지를 이야기 하는데 하나는 성차별이고 다른 하나는 부부가 같은 과에서 근무하는 것을 꺼리는 연고자 임용에 반대하는 분위기였다고 하는데 두 번째 이유는 핑계에 불과하고 솔직히는 성차별 때문이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예로 수학에서는 힐버트(Hilbert)의 강력한 추천에도 불구하고 정식 교수가 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그래서 4년간 힐버트의 이름으로 강의했던, 천재 여성 수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인 뇌더 (Noether) 가 있습니다.)

마리아는 1972년 세상을 떠났고 미국 물리학회는 매년 뛰어난 젊은 여성 물리학자에게 그녀의 이름을 딴 마리아 괴퍼트-메이어 상을 수여합니다. 또한 시카고 대학에서도 매년 뛰어난 여성 과학자나 공학자에게 상을 주고 있고 샌디에고 대학은 매년 여성과학자들을 초청해 과학에 대한 토의를 하는 마리아 괴퍼트-메이어 심포지엄을 개최합니다.

그녀에게 노벨상을 가져다준 원자핵 모형 외에 마리아는 많은 연구를 했는데 1931년 박사학위 논문은 2 개의 광자 (photon) 흡수 현상에 관한 것으로 이를 확인 하는 첫 실험이 1960년대에 가서야 가능했던 만큼 시대를 훨씬 앞선 연구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2 개의 광자 산란 단면적의 단위는 GM (Goeppert-Mayer) 단위로 부릅니다.




 <비정규직일 때와 정규직일 때의 마리아 괴퍼트-메이어. 출처: http://www.uni-goettingen.de, http://www.dw-world.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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