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4일 목요일

아인쉬타인의 논문을 리젝트한 사람

 

논문을 쓸때 보통 어느 저널에 보낼것인지를 대략은 생각하며 논문을 완성합니다. 논문을 저널에 보내게 되면 저널의 에디터, 즉 편집자는 그 논문이 자기 저널에 발표될 가치가 있는지를 따져 출판 여부를 결정합니다. 따라서 에디터는 그 분야의 전문가 중에서 널리 알려진 학자입니다.  보통의 경우 논문의 출판여부는 전적으로 에디터가 결정합니다. 하지만 에디터가 신이 아닌 이상 자기 전공의 모든 분야를 다 잘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출된 논문을 리뷰어 (또는 레프리)에게 리뷰를 의뢰합니다. 리뷰어는 통상 제출된 논문의 전공자, 즉 그 분야에서 나름대로 인정된 사람들중에서 선택하며 대개 1-2명이지만 3명 이상까지 선정하는 저널도 있습니다. 레프리는 보통 2-3주안에 심사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권고받지만 그 기한을 지켜 제출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수고비나 심사료 같은 것은 물론 없습니다.) 에디터는 논문의 출판여부를 리뷰어의 권고에따라 결정합니다. 현 논문 그대로 출판, 어느정도 수정후 출판, 또는 퇴짜 등. 논문의 저자 또한 이에 해당하는 권리를 갖습니다. 논문을 수정해 다시 제출하거나 리뷰어를 바꾸어 달라고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받아들이거나 무시하는 것은 전적으로 에디터의 권한이지만요. 논문의 저자와 레프리의 의견이 충돌하면 몇 달을 두고 싸우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판단은 에디터가 하지만 이견이 해소되지 않을 때 결국에는 명망있는 학자들로 구성된 편집위원회까지 올라가기도 합니다.  흔히 오해하는 것중의 하나가 어떤 논문이 유명 저널에 실렸으니 논문의 내용이 검증되었고 이를 인정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레프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논문의 내용을 검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레프리가 보는 것은 주로 논문의 주장이 타당한지, 논리의 비약은 없는지, 입증된 기반에서 논증을 시작하는지, 기존의 입증된 사실과 어긋나지 않는지, 논문에 발표된 계산 혹은 실험이 타당하고 다른 학자에의해 검증이 될 수 있도록 내용이 충실한지, 그리고 참고문헌이 공정하고 바르게 되어있는지 등입니다. 기존의 이론/실험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리젝트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근거를 더 자세히 기술해야하고 레프리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레프리가 그 논문의 계산이나 실험을 재현해서 검증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검증은 논문이 출판된 후 다른 연구에 의해 행해집니다.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쓴 논문이 리젝트되면 그 기분은 어떨까요?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 보통의 경우 대개 유럽 또는 미국의 저널을 고려합니다. 이 때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 또는 속해 있는 학교나 연구소가 있는 지역의 저널은 고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유럽의 학자들은 유럽의 저널을, 미국의 학자들은 미국에서 발행되는 저널을 주로 고려합니다. 물론 개인마다 다른 취향이 있어 특정 저널만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지만 논문을 발표할때 자기 지역의 저널을 주로 이용하는게 보편적입니다. 따라서 유럽에 있을 때는 유럽의 저널에 미국에 있을 때는 미국의 저널에 주로 발표하게 됩니다. 아인쉬타인은 1933년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독일에 있을 때는 물론 독일의 저널에 주로 논문을 투고했습니다. 1905년 벌표된 상대성이론을 포함한 그의 유명한 논문 5편은 모두 아날렌 데어 피직 (Annalen der Physik)을 통해 세상에 나왔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온 후에는 미국 물리학회의 공식 저널인 피지컬 리뷰(Physical Review)를 주로 이용했습니다. 1935년 EPR 논문이나 1936년 웜홀에 관한 논문들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1936년의 논문이 아인쉬타인이 피지컬 리뷰에 발표한 마지막 논문이 되었습니다. (1952년의 reply 형식의 출판이 유일한 예외입니다.) 아인쉬타인이 피지컬리뷰를 떠난 이유는 1936년 로젠 (Rosen)과 함께 쓴 중력파에 대한 논문에 대한 피지컬리뷰의 레프리 리포트를 받은 후 부터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퇴짜를 받은 것입니다. 아인쉬타인은 로젠과 함께 '중력파는 존재하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1936년 6월 1일 피지컬리뷰에 보냈고 이에 대한 답장을 (7월 23일자) 10장에 걸친 리뷰와 함께 받았습니다. 그 결과 7월 27일 피지컬리뷰의 에디터는 분노에 찬 답장을 받습니다.

 

Dear Sir,

  We (Mr. Rosen and I) had sent you our manuscript for publication and had not authorized you to show it to specialists before it is printed. I see no reason to address the -- in any case erraneous -- comments of your anonymous expert. On the basis of this incident I prefer to publish the paper elsewhere.

Respectfully,

P.S. Mr. Rosen, who has left for the Soviet Union, has authorized me to represent him in this matter.

 

<우리는 그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 귀하께 보냈지만 그 눈문이 출판되기 전에 귀하의 전문가에게 보이는 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귀하의 익명의 전문가의 코멘트에  - 어쨌던 틀린 코멘트지만 -  답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이 논문을 다른 곳에 출판할 것입니다.>

 

논문을 피지컬리뷰에서 철회한 후 아인쉬타인은 그 논문을 필라델피아의 Journal of the Franklin Institute에 보내고 이 논문은 수정없이 승인이 되었고 곧 출판되었습니다. 하지만 논문에는 중대한 수정이 있었고 결론 또한 피지컬 리뷰에 제출했던 논문의 결론과 반대였습니다. 비록 피지컬 리뷰에 제출된 논문의 사본은 남아 있지 않지만 정황상 그리고 간접적인 문헌으로 첫 번째 논문에서 '중력파는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아니오'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Journal of the Franklin Institute에 출판된 논문에서는 결론은 '예'로 바뀌었습니다. 분명히 레뷰어의 코멘트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죠. 그러면 아인쉬타인의 논문을 심사하고 리젝트한 사람은 누구일까? 원칙적으로 리뷰어의 신원은 밝히지 않지만 이 경우에는 논문과 심사에 관련된 학자들이 모두 사망한 경우라 미국물리학회에서 이를 공개했습니다. 피지컬 리뷰의 기록에 따르면 논문을 1936년 6월 1일 접수가 되었고 6월 6일 레프리에게 보내졌습니다. 레프리의 리뷰는 7월 17일자로 접수 되었고 7월 23일 아인쉬타인에게 통보되었습니다. 레프리는 프린스턴에서 연구하던 상대성이론 전문가인 하워드 펄시 로버트슨(H.P. Robertson)이었습니다. 그는 아인쉬타인의 동료로 같은 곳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칼텍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휴가차 아이다호주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논문의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잘못된 부분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인쉬타인의 논문을 리젝트 했던 로버트슨, 이미지출처 : photos.aip.org>

 

리뷰어 제도가 먼저 정착이 된 것은 유럽보다 미국이 더 빨랐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유럽저널들의 논문 리젝트 비율을 5-10%를 넘지 않았다고 합니다. "논문이 없는 것보다는 틀린 논문이라도 싣자"라는게 그들의 생각이었고 플랑크는 이를 크게 비판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아인쉬타인의 논문은 레프리의 리뷰없이 곧장 출판승인되었기 때문에 레프리 리포트를 벋은것은 위의 경우가 차음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논문을 레프리하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레프리의 원래 목적이 논문의 오류를 바로 잡고 독자를 위해 더 읽기 좋은 방향으로 논문 수정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생각하면 책임감이 더 무거워집니다. 아인쉬타인의 논문에 수정을 요구했던 로버트슨은 레프리의 역할을 훌륭하 수행한 좋은 레프리라 할 수 있겠죠.


<아인쉬타인의 70회 생일기념사진. 제일 왼쪽이 로버트슨, 이미지출처 : photos.aip.org>

 

(추가: 아무리 위대한 학자라도 모든 논문이 다 오류가 앖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아인쉬타인의 경우는 참고문헌에 놀라울 정도로 무신경이었다고 합니다. 1905년의 논문들은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참고 문헌의 문제로 최소 한 번은 수정을 요구 받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나중에 인펠트 (Infeld)가 그와 함께 책을 쓰면서 '산생님의 이름으로 책이 나가기 때문에 혹여 틀린 곳이라도 있을까 아주 많이 신경을 쓴다'고 하니 아인쉬타인은 크게 웃으며 '그럴 필요 없다네. 내 이름으로 나간 논문중 틀린 논문들도 있으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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